사람들은 오달수(47)를 '천만요정'이라고 부른다. 최근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마다 늘 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만요정'이라는 네 글자만으로 오달수의 연기 인생을 담기에는 어딘가 부족함이 느껴진다. 그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진솔한 감정으로 관객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는 30일 개봉하는 '대배우'(감독 석민우)는 배우 오달수의 연기 인생을 엿볼 수 있는 영화다.
◆ 우연처럼 연극배우가 되다
'대배우'는 20년째 연극판에서 무명 배우로 살아온 장성필(오달수)의 이야기를 그린다. 아동극 '플란다스의 개'에서 대사 한 마디 없는 개 파트라슈 역을 맡고 있는 장성필은 사실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는 아니다. 어려운 경제 형편으로 아내와 아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지만 그럼에도 배우의 길을 포기할 생각은 없다. 언젠가는 꿈을 이루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오달수는 그동안 수많은 작품 속에서 다양한 캐릭터로 변신해왔다. 그러나 '대배우'의 장성필만큼 깊이 공감한 캐릭터는 처음이었다. 오달수 스스로도 "70% 정도 공감이 갔다"고 말할 정도다. 무엇보다도 연극배우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이 오달수의 마음을 파고 들었다. 오달수도 장성필처럼 연극판에서 연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다만 장성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처음부터 연기의 꿈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오달수에게 연기는 우연과도 같이 찾아왔다.
"대학 때 디자인을 전공했어요. 인쇄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부산에 있는 가마골소극장에 포스터 배달을 많이 갔죠. 연희단거리패가 1년 동안 쉬지 않고 연극을 하던 곳이었어요. 배달을 자주 가다 보니 밥도 얻어먹고 설거지와 청소도 해주면서 친분을 쌓았죠. 그러다 하루는 '배역 하나가 있는데 그냥 무대에 가만히 앉아서 화투만 치고 있으면 된다'는 말을 듣고 무대에 서게 됐어요. 그렇게 '오구'에서 '문상객1' 역할로 연극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오달수는 "처음 무대에 섰을 때 '내가 미쳤구나'라고 생각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속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연기에 대한 재미도 느꼈다. 그렇게 전공이었던 디자인 대신 연기의 길을 선택한 오달수는 1997년부터 서울로 올라와 대학로를 중심으로 연기 인생을 이어갔다.
◆ 자연스럽게 뛰어든 영화판
오달수가 '대배우'의 장성필에 깊이 공감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연극배우를 시작으로 영화판에 뛰어들게 되는 장성필의 이야기가 자신의 인생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과정의 디테일은 다르다. 장성필은 자신과 함께 극단에서 활동했고 지금은 국민배우가 된 선배 배우 설강식(윤제문)에 대한 부러움, 그리고 보다 안정적인 경제 형편을 위해 영화판을 꿈꾼다. 그러나 오달수는 연극과 마찬가지로 영화도 우연처럼 시작했다.
"연극배우들이 한참 충무로로 많이 갈 때였어요. 연극배우와 영화배우의 경계가 서서히 허물어지던 때였죠. 주진모 선배님이랑 김상호와 함께 '인류 최초의 키스'라는 연극을 하고 있을 때였어요. 아는 후배가 '해적, 디스코왕이 되다'라는 영화에서 '뻘쭘남' 역할을 찾는다고 소개를 시켜줬죠. 한 3일 정도 촬영했죠. 그게 첫 영화였습니다. 그 뒤에 '여섯 개의 시선' 중 박찬욱 감독님의 단편에 출연하게 됐고 그때의 인연으로 '올드보이'까지 찍게 됐죠."
영화는 어떻게든 영화판에 뛰어들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장성필을 통해 소소한 웃음을 만들어낸다. 때로는 그 처절한 모습에서 짠한 뭉클함이 느껴진다. 오달수는 "장성필의 처절함은 극적인 장치"라며 "장성필과 같은 태도는 배우로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오달수는 장성필이 처한 상황에 최대한 공감하며 그를 동정과 연민이 가는 인간적인 인물로 만들어냈다.
"사실 장성필은 진짜 연기를 못하는 배우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20년을 버텼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죠(웃음). 하지만 그가 처한 상황은 충분히 이해가 가요. 다만 한편으로는 연극하는 사람들이 장성필처럼 찢어지게 가난하고 어떻게든 기회를 잡으려고만 하는 사람처럼 보일까봐 겁도 나요. 실제로는 안 그렇거든요. 연극하는 사람들은 그 어떤 직장인보다도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느끼는 행복한 사람들이니까요."
◆ 관객과의 만남이 가장 큰 즐거움
오달수와 장성필이 걸어온 길은 이렇듯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그러나 관객 입장에서는 영화 속 장성필의 삶이 오달수의 자전적인 이야기처럼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오달수도 장성필을 연기하면서 불현 듯 자신의 모습이 튀어나오는 경험을 했다. 깊이 공감됐지만 그래서 오히려 연기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오달수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자신이 아닌 장성필이었기 때문이다.
"배우라면 자신이 맡은 인물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해야 연기도 진솔하게 나온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장성필의 삶이 제가 지나온 세월처럼 느껴지다 보니 불쑥불쑥 제가 튀어나오더라고요. 배우라면 하나의 캐릭터를 입고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해야 하는데 말이죠. 그래서 들쭉날쭉 뒤죽박죽 연기했다는 느낌도 있어요. 그럼에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단역과 조연을 거쳐 '천만요정'이라는 영광스러운 수식어를 얻은 오달수는 이제 '대배우'로 첫 주연까지 맡게 됐다. 그가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말처럼 진솔한 연기로 인간적인 감정을 관객과 함께 나눴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배우로서 가졌던 고민의 산물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관객을 '코뿔소'라고 생각했어요. 배우는 관객이라는 코뿔소의 코를 잡고 팽팽하게 버티고 있다고 생각했죠. 연기를 잘 모르던 철 없던 때의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언젠가부터 내가 만나는 건 '코뿔소'가 아닌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연기는 나를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을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을지, 그리고 관객 입장에서 어떻게 그들의 마음을 대변해줄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됐어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저를 친근하게 느끼게 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랫동안 연기를 해왔지만 여전히 오달수에게 연기라는 것은 쉽게 정의내릴 수 없는 관념적인 주제다. 그는 "저에게 연기란 무엇인지 묻는다면 그 대답은 제가 죽기 10분 전 말씀드리겠다"며 웃었다. 그 대답을 찾기 위해 오달수는 또 다시 카메라 앞에 선다. 관객과의 만남, 그것이 배우 오달수가 느끼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그냥 꾸준하게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요. 그리고 이 일을 꾸준히 해나갈 겁니다. 어떤 작전을 짜고 어떻게 실천을 하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늙어 줄을 때까지 관객과 만날 거예요. 그때까지 예쁘게 봐주시길 바랍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