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사람에게 떡 하나 더 주라는 말이 있다. 왜 미운데 어떻게 떡을 하나라도 더 준단 말인가? 외면하고 피하면 피했지.이것이 보통 사람들의 미운 사람들에 대한 대처법이다. 그러나 우리 선인들은 미운 사람에게 떡 하나 더 주라 했다. 이 말은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뜻을 넘어서 미움이 이해와 사랑으로 변화하는 화학감응을 불러일으킴을 은유한 말이다. 역설의 미학을 표현해 주는 말로 필자는 해석한다. 사람을 얻으면 모두를 얻는 것이라 했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적을 만들기에 분주한 것만 같다. 특히 사주학적으로 오행이 치우쳤거나 사주명조의 조후(調喉)가 한 쪽으로 몰린 경우 괴강이나 신강양인(身强羊刃)사주의 경우에는 대인관계의 호오(好惡)가 분명하여 인간관계가 원만치 못한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들의 경우에는 미운 사람에게 떡 하나 더 준다는 교훈을 반드시 새겨두어야 인간사 실패가 적다. 잘못을 했다 해도 비판을 위한 비판은 하지 말아야 하며 남을 향해 쏟아낸 비난은 부메랑이 되어 자신의 가슴에 다시 꽂히게 된다. 게다가 상대방을 비난하는 말을 하고 나면 오히려 그 다음은 내 맘이 더 불편해진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더 화가 나게 된다. 그러하기에 미운 사람일수록 각별히 대하여 원망을 원망으로 남기지 말아야 함을 우리 조상들은 안 것이다. 살다보면 괜히 싫은 사람들도 있게 된다. 별스럽지 않은 행동도 그냥 거슬리기도 하며 외면하는 것이 차라리 편한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는 정말 미운 짓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에게 비난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사주속으로' 독자분들께서도 운을 아름답게 바꾸고 싶다면 직장생활이나 친구사이에서도 정말 각별하게 대해주는 마음을 한 번 가져보길 바란다. 밉고 싫어서 피하고 싶을 때 오히려 그들에게 손을 한 번 내밀어 보라. 각별하게 대해주면 적군도 아군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미운 사람에게 떡 하나 더 주라고 했던 것이다. 이는 단지 상대방을 속이기 위함이 아니다. 실제로 미운 감정을 꾹 참고 떡 하나 더 줬더니 상대방은 나의 호의를 믿고 눈빛이며 태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나 역시 상대방의 그런 태도에 내 마음 역시 조금은 달라진다. 이렇게 해서 서로 서로 진정이 통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참으로 희한한 것이 내가 누군가를 싫어하면 그 상대방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만 싫어하고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싫어하는데도 노력이 동원된다. 싫어하지않으려 하는데도 노력은 쏟아진다.이것이 바로 에너지 기운의 상호작용이다. /김상회역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