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란 성경 귀절은 눈으로 직접 보고 만져야만 믿을 수 있는 의심 많은 신앙심을 경계한 말이다. 예수의 열두제자 중의 하나였던 도마가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한 후 부활하신 예수님을 못 믿겠다고 말하자, 예수님은 상처부위를 직접 보여주고 만지게 한 후에야 도마는 "이제야 믿겠나이다."라고 말한다. 이런 도마에게 예수님은 보지않고도 "믿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라고 말씀했다. 2012년도 언젠가로 기억된다. 뉴스를 보고 있자니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된 뒤 시신을 감쌌던 수의로 알려진 '토리노의 수의'가 중세 때 만들어진 가짜라는 주장이 나왔다. 이탈리아 포플라레대학의 저명한 교회 사학자인 안토니오 롬바티 교수는 오랫동안 그 진위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던 이 토리노의 수의에 대하여 "토리노 수의는 수세기 동안 예수의 것으로 숭상 받아왔지만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한 지 1300년 가랑 흐른 뒤인 14세기경 터키에서 만들어진 가짜"라고 주장하면서 또한 이 수의는 중세 기독교 국가들에서 유포됐던 수많은 수의 가운데 하나일 뿐으로 당시에는 이런 유의 수의가 40개나 있었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 내용은 영국 데일리메일이 보도한 것으로 이보다 훨씬 이전인 1988년에 옥스퍼드대에서 실시한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 실험에서도 토리노의 수의는 1260∼1390년에 제작됐다는 결과가 나왔다. 아마도 기독교 신앙이 돈독한 사람들은 이런 기사가 반가웠을 것 같지는 않다.흔히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현세의 어려움과 고단함을 벗어나게 해줄 그 어떤 기적이나 무한한 권능이 보여지고 나타나주길 기대한다. 실제로 우리 나약한 인간들은 항상 기적을 갈구하고 있고 실제로 이러한 권능을 강조하는 종교지도자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런 면은 기복신앙의 꾸준한 뿌리가 되어오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가 없다. 그러나 기복과 기적을 바라기에 앞서 바로 보고 바로 아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기적도 올바른 생각과 행동이 전제된 간절한 바람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지 욕심이 투영된 맹목적인 바램이나 소원은 이뤄진다 해도 순간만 좋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易)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삶의 지혜가 된다. 필자가 항상 하는 얘기지만 삶의 비바람이 몰아치는 시기를 읽을 수 있다면 완전히 피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바람막이는 준비할 수 있다. 이런 이치를 우리 선인들이 선험(先驗)하였기에 후손들에게 역의 원리를 알고 이해하여 삶의 여정에 활용하도록 한 유산인 것이다. 이는 맹목적인 믿음과도 다른 것이며 무조건적으로 기적을 기대하는 어리석음과도 다른 것이다. /김상회역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