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야 현대 국가에서는 없어진 형벌제도지만 옛날 전통주의 시대에는 육형(六刑)이라 하여 죄를 지은 자들에게 태형이나 궁형 등을 가했다. 그러나 이슬람국가에서는 아직도 '눈에는 눈'이라는 원칙을 적용하여 과거 시대의 태형제도가 존속되고 있다고 한다. 필자도 과거 기억을 거슬러보니 세계사 시간에 함무라비법전에 나와 있는 "눈에는 눈, 손에는 손"이라는 함축어로 대변되는 당시의 형법제도를 외웠던 기억이 난다.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다리는 다리로, 낙(烙)은 낙으로, 타상(打傷)은 타상으로 갚는다"는 탈리오법칙과 같이 범죄의 종류에 따라서 구체적으로 형벌을 부과했다. 중국의 태형제도를 본 딴 우리나라 역시 이미 죽은 자의 무덤을 파내어 참형이나 단지형을 행하는 부관참시에까지 이르면 이는 이슬람국가들의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함무라비법전의 신체형보다 더하면 더했지 전혀 약한 형벌제도가 아니다.과거의 형벌 중에 이마나 보이는 신체의 한 부분에 먹물을 들이는 자자(刺字)는 그가 죄인임을 표식하여 망신을 주고 평생을 죄인이라는 굴레 속에 살게 하였으니 여타 사람들에게는 경계의 뜻을 주하고자 함이었겠지만 참으로 사회 속에서 살아나가야 하는 인간의 굴레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다행히 사회가 발전하고 인간의 의식이 시민화 됨에 따라 형벌의 과형(科刑)목적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 교육형(敎育刑)·목적형주의(目的刑主義)를 가미하면서부터 형의 종류는 사형·육형에 한정된 형벌에서 육형은 차차로 드물어가고 새로운 종류의 징벌제도가 생기게 되었다. 서양에서는 나다니엘 호오든의 소설 '주홍글씨'에서 보듯 입고 있는 옷의 가슴부분에 'A'자를 새기어 공개망신을 주기도 하였다. 신체에 직접 새기지는 않으나 '자자'와 비슷한 형벌이라 하겠다. 이는 요즘 사회에 만연하는 공개적인 왕따라 할 수 있겠는데 이 잘못된 왕따문화는 현대사회에 들어와 학교며 직장 내에서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는 듯해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러나 항상 잊지 않아야 할 것은 예수님이 지적하였듯 우리 스스로 부끄러운 일이 많은데 그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으랴? 자기에게는 관대하나 남에 대해서는 신랄한 것은 치졸하고 졸렬한 삶이다. 자기 눈의 대들보는 못보고 남의 눈의 티끌을 지적하면서 남을 비방하고 예단하며 말로서 무서운 구업(口業)을 지을 뿐만 아니라 행동으로도 업을 더한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남에게도 해로운 일이 되지만 스스로의 복덕을 훼손하는데 으뜸이 되는 불선업(不善業)이 됨을 알아야 한다. /김상회역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