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곡성'(감독 나홍진)은 한마디로 정리할 수 없는 기이한 이야기를 다룬다. 스릴러와 호러, 오컬트 등 여러 장르가 뒤섞인 영화는 2시간30여분의 긴 시간 동안 관객의 마음을 흐트러짐 없이 붙잡는다. 그것은 이 기이함 속에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의 강한 몰입도는 배우 곽도원(41)의 힘이기도 하다. 그는 '곡성'에서 평범함을 대변하는 주인공 종구를 연기했다.
곽도원은 나홍진 감독으로부터 오랜만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통해 '곡성'과 만났다. 두세 번의 만남이 이어진 뒤에야 나홍진 감독은 곽도원에게 시나리오를 건넸다. 그때까지만 해도 곽도원은 자신이 주연을 맡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디테일한 나홍진 감독은 조연 배우를 캐스팅할 때도 이렇게 여러 번을 만나 배우를 뽑는구나'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러나 나홍진 감독이 곽도원을 만난 것은 '곡성'의 주인공인 종구 역을 그에게 맡기기 위해서였다. "같이 술을 마시는데 나 감독이 종구 역할이라고 하더라고요. '진짜요?'라고 되물었어요. 그랬더니 '황해' 이후에 제가 출연한 영화를 계속 봤다고 하더라고요. 코미디도 정극도 다 할 줄 아는 것 같다고 칭찬도 해서 꼭 하고 싶은 마음에 연극할 때는 코미디만 했다는 이야기도 했어요(웃음)." 그렇게 곽도원은 '곡성'으로 첫 영화 주연의 기회를 거머쥐었다.
주연이라고 연기 방식을 바꾸지는 않았다. 어떤 역할이든 캐릭터를 분석하는 방법은 똑같기 때문이다. 다만 주연으로 짊어져야 할 책임감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 '될 때까지 하는' 나홍진 감독의 현장에 대해서도 익히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부담을 떨쳐낸 건 자신감이었다. "저도 '연기 잘 한다'는 것보다는 '죽을 것 같이 열심히 하겠다'는 자신감은 있거든요. 그래서 덤비듯이 했어요."
곽도원은 종구를 "주변에서 접하기 쉬운 아저씨"라고 소개했다. 종구를 연기하면서 가장 신경 쓴 것은 바로 일상적인 인물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나홍진 감독에게 살을 뺄지 물었더니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촬영 중에 술 마시는 것도 괜찮다고 하고요(웃음). '나이만 먹는다고 어른이냐'는 말처럼 어른이라고 해도 절망하거나 자괴감이 들 때가 있잖아요. 종구도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극중에서 종구는 경찰임에도 현장에서 늘 당황하며 어수룩한 모습을 보여준다. 곽도원은 "실제로 그런 경찰을 만난 적 있다"며 "그만큼 현실적인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많은 이야기를 담은 영화지만 그 중심에는 딸 효진(김환희)을 지키기 위한 종구의 사투가 있다. 아직 아버지로서의 경험이 없는 곽도원은 '곡성'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아버지의 마음을 느꼈다. "아버지가 돼야 아버지의 마음을 안다고 하잖아요. 6개월 동안 현장에서 효진이를 키우다 보니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효진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표현하다 보니 내 아버지도 이렇게 나를 키우셨겠구나 싶었죠." 그래서 곽도원은 '곡성'의 이야기가 지극히 현실적이라고 이야기한다. 딸을 지키기 위한 종구의 행동도,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결말까지도 곽도원에게는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홍진 감독과의 두 번째 작업에서 얻은 것도 많다. 종구의 의상을 고르기 위해 2일 동안이나 의상 피팅을 하고, 사실적인 공간 표현을 위해 전라도와 경상도, 강원도를 오가는 로케이션 촬영을 진행하는 나홍진 감독의 디테일한 연출은 배우로서 연기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그러면서도 무엇과도 타협을 보지 않는 나홍진 감독의 집요함을 보며 '엄청나다'는 생각도 했다. 곽도원은 "나중에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건방져지면 나 감독을 찾아가 작은 역할이라도 좋으니 같이 작품을 하자고 말할 것"이라며 "죽을 것 같이 열심히 하는 나홍진 감독과의 작업에서 엄청난 시너지를 얻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곡성'을 촬영하면서 나홍진 감독은 곽도원에게 "힘을 빼고 편안하게 연기하라"는 주문을 여러 차례 내렸다. 그때마다 곽도원은 "나도 편안하게 연기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나홍진 감독이 요구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잘 알지 못했다. 그는 완성된 영화를 본 뒤에야 나홍진 감독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조연은 어떻게든 그 신을 자기 장면으로 만들어야 해요. 하지만 주연은 이야기의 화자지만 수많은 조단역이 연기를 펼칠 수 있게끔 무대를 만들어줘야 하죠. 그러기 위해서는 욕심을 내지 말고 힘을 빼 연기해야 하는 거고요. 영화를 보고 나니 주연은 그릇 자체가 편해져야 한다는 걸 알겠더라고요. 이제야 그 맛을 봤어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