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많은 아버지가 있다. 한없이 무섭고 근엄한 아버지가 있는가 하면 감정 표현은 서툴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아버지도 있다. 영화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감독 권종관)의 순태(김상호)는 누구보다도 따뜻한 마음을 지닌 아버지다. 한쪽 팔에 새겨진 문신에 험난한 과거가 담겨 있지만 지금은 중학생 딸 동현(김향기)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딸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해주겠다는 평범한 아버지다.
영화는 순태가 재벌가의 며느리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법률 브로커 필재(김명민)가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는 과정, 그리고 딸을 위해 어떻게든 살리고자 하는 순태의 고군분투가 이 영화의 중요한 축이다. 영화를 보고나면 김상호(45)의 애잔한 부성애가 김명민의 능청스러운 연기와 함께 강한 인상을 남긴다.
김상호는 "시나리오를 읽고 생각이 난 사진이 있었다"고 말했다. 추운 눈보라 속에서 쭈그린 채 추위를 버티고 있는 들짐승의 이미지였다. 김상호에게는 순태가 딱 그렇게 다가왔다. 버티고 견딜 수밖에 없는 순태의 모습에 마음이 움직였다. "순태는 딸 동현을 만나기 전과 후가 다른 인물이에요. 전에는 그냥 막 사는 인물이었다면 동현을 만난 뒤 평범해진 거죠. 딸만큼은 자신과 같은 아픈 유년 시절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온 보통 아버지죠."
순태는 영화의 감정의 중심을 잡는 중요한 역할이다. 권종관 감독도 김상호에게 "순태가 관객을 이해시키지 못한다면 우리 영화는 무너진다"며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상호가 가장 신경 쓴 것은 순태의 마음을 얼마만큼 표현할지였다.
"관객들이 순태를 믿는 힘은 동정이나 안타까움이라고 생각했어요. 순태가 처한 환경만으로도 관객에게 어필할 부분이 충분했죠. 그래서 오히려 저의 연기는 과하지 않은 것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향기와 함께 연기하는 것도 도움이 많이 됐어요. 향기가 옆에서 순수한 울림판으로서의 역할을 잘 해줘서 힘이 많이 됐죠."
이번 영화에서 김상호는 유독 혼자 연기하는 장면이 많았다. 교도소에 갇힌 순태의 특수한 상황 때문이었다. 그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연기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감독님과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며 이야기하는 것도 재미있다"고 말했다. "아무리 힘들지라도 연기는 재미있다"는 생각에서다.
"배우는 각자 맡은 역할에 따른 임무가 있어요. 그걸 수행하는 과정에서 다른 배우를 만나면 파장이 생기는 거고요. 물론 이번에는 혼자 연기하는 장면이 많아서 감독님과 의견을 나누며 연기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감독의 영역, 그리고 배우의 영역도 알고 보면 어느 정도는 겹쳐져 있거든요. 그런 부분을 극대화하는 작업이라 즐거웠어요."
김상호는 최근 작품 속에서 유독 아버지로 애잔한 부성애를 많이 보여줬다. 영화 '미쓰 와이프'에서는 딸의 곁을 남몰래 지키는 아버지로 분했고 드라마 '디데이'에서는 재난 상황 속에서 딸을 지키고자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아버지를 연기했다. 어떤 아버지라도 그가 연기하면 마음을 뭉클하게 만든다. 김상호는 "타고난 장점이라기보다는 나만의 독특함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제가 자라온 환경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옛날에 엄마가 그러셨거든요. '상호가 울면 내가 서럽다'고요.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저의 특징 같아요(웃음). 시나리오를 볼 때 그런 아버지에 마음이 더 움직이는 건 있어요. 음식점에 들어가면 많은 반찬 중에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먼저 젓가락이 가는 것처럼요."
혼자서만 감정을 쌓아가야 하는 역할이기에 힘든 부분도 있었을 법하다. 그러나 김상호는 "인터뷰를 하면서 영화를 촬영할 때를 다시 생각해보면 아직도 울컥하는 장면이 있기는 있다"며 "그런 감정들도 영화가 개봉하면 눈 녹듯이 사라져 내 안의 다른 곳에 쌓여 있을 것"이라며 웃었다. 그는 곧 개봉할 영화와 만날 관객을 "바보이자 하느님"이라고 설명했다. "선배 연극 배우들이 그런 말씀을 하세요. 관객은 바보이자 하느님이라고요. 연기의 잘못을 파헤칠 때는 하느님처럼 전지전능하게 파헤치지만 우리의 편이 되면 우리가 어떤 연기를 해도 따라오면서 이해준다고요. 그렇다고 해서 관객에게 잘 보이려고 해야 한다는 건 아니에요. 그만큼 정말 긴장해서 철저하게 준비해 관객과 만나야 한다는 거죠(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