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사격 금메달리스트 이은철./손진영 기자 son@
"서울 올림픽에서 메달을 못 땄을 때 크나큰 시련을 겪었어요. 하지만 돌아보면 그때 그 시련이 하늘에 준 또 다른 삶을 살 수 있었던 기회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힘들어 하는 후배들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해요. '명검은 달리 명검이 되는 게 아니라 두들기고 또 두들겨야 명검이 된다'고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사격 50m 소총 복사 부문 금메달리스트 이은철은 한국의 사격을 세계 최고의 실력으로 이끈 선구자 같은 선수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을 시작으로 2000년 제27회 시드니 올림픽까지 한국 선수 최초로 5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한 기록도 갖고 있다. 올림픽과 아시안 게임, 그리고 세계선수권대회와 아시아선수권대회까지 금메달을 따는 '그랜드슬램'의 기록을 갖고 있는 것도 아직까지 그가 유일하다.
이은철이 사격을 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였다.
"맥아더 장군 동상이 있는 인천 자유공원에 놀러갔다 코르크 총으로 인형을 맞추는 게임을 하게 됐어요. 이게 원래는 잘 안 맞는 건데 그날은 이상하게 잘 맞더라고요. 그렇게 뽑은 인형을 친구들에게 나눠줬다고 어머니께 자랑스럽게 이야기했죠. 그 이야기를 귀 담아 들으신 어머니께서 취미로 사격을 권하셨어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사격 금메달리스트 이은철./손진영 기자 son@
남들보다 먼저 시작한 만큼 실력도 금방 좋아졌다. 때마침 열린 어린이 사격대회에서는 다른 아이들을 제치고 1등을 차지할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다. 중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그곳에서도 총을 놓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는 전미 사격대회에서 뛰어난 실력으로 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1984년, 태극마크를 달고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출전했다. 세계 무대에 자신의 실력을 보여줄 첫 기회였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고등학생 때라 어마어마하게 떨렸어요. 실력은 다른 선수들보다 월등히 나았지만 성적은 중간에 조금 못 미쳤죠." 2년 뒤 출전한 아시안 게임에서는 마침내 처음으로 금메달을 땄다. 하지만 이마저도 실패작이었다. "그때 제 목표는 개인전 금메달 5개였어요. 제 실력으로는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단체전에서만 금메달을 땄었요. 개인전은 은메달 3개였죠."
그럼에도 이은철은 사격을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실력이 계속해서 좋아지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자신감 속에 두 번째 올림픽인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출전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8강 진출에 실패하면서 이은철은 좌절에 빠졌다.
"충격이었죠. 연습을 게을리 했거나 해서 그런 성적을 얻었다면 후회라도 할 텐데 저는 그때 진짜 열심히 했거든요. 거의 3년 동안을 사격을 위해 바쳤으니까요. 그래서 올림픽이 끝나고 바로 사격에서 은퇴해 미국으로 돌아갔어요. 1년 반 동안 총을 놓고 공부만 했죠."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사격 금메달리스트 이은철./손진영 기자 son@
하지만 한 번의 실패만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이른 때였다. 미국에서 공부에 매진하면서도 늘 패배자라는 마음이 있었다. 1990년 한국에서 다시 한 번 태극마크를 달아달라는 요청을 받자 그는 놓았던 총을 다시 잡았다. 그해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금메달을 2개나 목에 걸었다. 국제 대회에서 한국 사격이 처음으로 따낸 금메달이었다.
2년 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105.5의 놀라운 성적을 기록하며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제 인생에서 가장 잘 나온 성적이었죠. 오히려 긴장이 풀리니까 성적이 더 잘 나오더라고요. 서울 올림픽 때까지는 한 발 한 발에 너무 집중하다 보니 실력을 제대로 발휘 못한 것 같더라고요." 그 뒤로도 이은철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과 2000년 시드니 올림픽까지 출전하며 사격 선수로서의 생활을 이어갔다. 그리고 사격에서 모든 꿈을 이뤘다는 생각에서 진짜로 은퇴를 선언하고 새로운 삶을 준비했다. 그의 발길이 향한 곳은 IT업계였다.
"제가 좋아하는 것이 두 가지였어요. 하나가 사격이었고 또 다른 하나가 컴퓨터였죠. 200년 시드니 올림픽까지 마친 뒤 사격에서 더 이상 열정이 안 생겨서 은퇴를 결심했어요.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실리콘 밸리에서 바닥부터 다시 시작했죠." 그렇게 차곡차곡 커리어를 쌓아온 그는 지금 빅데이터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트레저 데이터의 한국 지사장을 맡아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미국의 학교는 한국과 다르게 일정 수준의 성적을 받지 못하면 외부 활동을 못하게 돼있어요. 그래서 기본적인 공부는 어느 정도 해야 하죠. 그리고 스포츠에 투자도 많이 하고요. 페어플레이를 통해 삶에 공정성을 부여하는데 굉장히 좋거든요. 하지만 우리는 이겨야 한다는 경쟁심이 먼저죠. 어떻게 보면 너무 적은 돈으로 너무 많은 메달을 따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정책적인 문제도 있고요. 그런 걸 바꾸고 싶다는 생각에 대한민국국가대표선수회 활동을 하고 있어요."
지금은 IT업계에서 일하고 있지만 이은철은 "사격은 나의 고향"이라고 말한다. 그의 다음 꿈은 IT업계에서 충분히 성공을 거둔 뒤 다시 사격으로 돌아가 봉사하는 것이다. 보다 재미있게 사격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것이 이은철이 지금 바라는 또 다른 꿈이다.
"인생에서 즐거움이 25%라면 어려움이 75%라고 생각해요. 25%의 즐거움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니까 힘든 시기만 잘 지나가면 되는 거죠. 그리고 메달은 진짜 하늘에서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실력 있을 때는 메달을 못 땄으니까요. 리우 올림픽에 나가는 후배들도 메달은 일단 하늘에 맡기고 자신의 실력을 최대한 발휘하면 좋겠어요. 그러면 좋은 성과가 나올 거라고 믿습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사격 금메달리스트 이은철./손진영 기자 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