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가 국정과제 우선순위에 '가계부채'를 꼽으면서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강화 논의도 본격화하고 있다. 역대 정부에서 대출규제가 나올 때 마다 부동산 시장도 크게 영향을 받았던 만큼 이번 조치가 시장에 미칠 여파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3일 국토교통부 등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8월까지 가계부채 합동 관리방안을 마련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가계부채 증가의 주요원인으로 지목된 LTV과 DTI에 대한 논의에 착수했다.
◆업계 '화두' LTV·DTI 재조정 가시화
LTV와 DTI 완화 조치는 오는 7월 말로 일몰을 맞는다. 지난 2014년 8월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이끄는 경제팀은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명분으로 LTV를 기존 50~60%에서 70%로, DTI를 50%에서 60% 수준으로 각각 완화했다.
이어 1년 단위로 완화 조치가 두 차례 연장됐고 전세난에 지친 서민들이 대출을 끼고 집을 사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주택대출도 위험수위까지 치솟았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도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LTV·DTI 규제를 푼 것이 지금의 가계부채 문제를 낳은 요인"이라며 규제 강화 입장을 시사했다.
실제 LTV와 DTI를 강화할 경우 강남3구 등 재건축 아파트 가격 상승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13일 부동산114에 따르면 2002년 9월 LTV를 60%로 제한하는 규제가 처음 도입된 이후 3개월간 서울 아파트값은 1.2%, 수도권 아파트값은 1.8% 오르는데 그쳤고 강남3구 재건축 단지는 0.1% 하락했다.
대책이 나오기 직전 3개월간 서울이 9.8%, 수도권이 8.4%, 강남 3구 재건축 단지가 14.9% 오른 것을 고려하면 상승폭이 크게 둔화된 것이다. 2003년 10월 투기지역 내 만기 10년 이하 대출 LTV를 50%에서 40%로 강화했을 때도 규제 이전 3개월간 14.0% 올랐던 강남3구 재건축은 규제 이후 3개월간 4.6% 하락했다.
◆주택 실수요자 피해·시장 위축 우려도
그러나 LTV와 DTI에 손을 댈 경우 다주택 투자자와 고가 주택 매입자 등의 투자가 줄어 들면서 부동산 시장을 위축시켜 모처럼 회복세를 타고 있는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LTV·DTI 규제가 강화되면 국내 경기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한경연은 이 보고서에서 "DTI 강화로 가계부채가 10% 감소한다고 가정하면 국내총생산(GDP)은 2조7090억원 줄어든다"며 "추후 경기가 안정되면 DTI 규제를 점진적으로 강화하는 것이 옳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금융권에서도 LTV·DTI의 조정은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을 신중하게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출규제가 강화되면 저소득층은 물론 주택 실수요자들의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의견에서다. 또 달아오른 서울·수도권과는 달리 지방에서는 여전히 미분양이 속출하고 있는 만큼 LTV·DTI의 조정이 '부동산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가계부채 증가는 LTV·DTI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저금리 기조, 주택시장 호조 등 복합적 요인이 함께 작용한 것"이라며 "부동산 투기를 잡으려면 가계대출에 대한 정책적 고려를 하되 이와 함께 부동산 대책도 나와야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차주에 따른 선별적 규제가 바람직"
이에 따라 LTV와 DTI를 일률적으로 강화하기보다는 투기수요 억제에 초점을 맞춰 선별적으로 강화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저소득층과 생애 첫 주택 구입자에 대해서는 규제를 완화시켜 주고 반대로 다주택 보유자나 투기가 의심되는 차주는 강화된 규제를 적용하는 것이다.
김 장관 후보자 역시 최근 "LTV·DTI 규제가 저소득층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완화 연장 여부는 부채 증가세, 주택시장 동향, 대출 동기, 지역별 계층별 여건 등을 감안해 금융위원회 등 관계 부처와 충분히 검토해 결정하겠다"고 선별적 규제에 대한 의사를 드러낸 바 있다.
유정석 단국대학교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는 "대출규제가 과열된 부동산 경기를 안정화 시킬 수 있지만 실수요자의 주택 구매까지 막는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며 "현재 정부 입장에서 가장 큰 애로사항은 실수요자와 투기수요를 구분하는 방법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이어 "관계부처의 충분한 검토를 거쳐 지역 혹은 계층을 나눠 선별적으로 규제를 강화하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며 "또 경제 전반의 거시적 규제보다는 분양권 전매제한 강화 등의 미시적 규제를 추가적으로 도입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