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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지역

영종의 역사를 기록해 온 김홍일 사진가의 열정

 

영종의 역사를 기록해 온 김홍일 사진가. 그의 나이만큼이나 오래 된 카페라가 그의 사진역사를 말 해 주고 있다.

인천 중구 운남동 영종중앙교회 옆 한 빌라에 살고 있는 김홍일 어르신을 찾았다. 어르신은 1935년 영종도 진등(현재 스카이72바다코스 자리)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올해 86세가 되신 어르신을 15년 전 '영종사진관'을 운영하고 계실 때 만나 뵌 적이 있다. 세월의 무게는 벗을 수 없었는지 그때보다 기력이 많이 약해져 보였다.

 

영종에서는 어르신과 비슷한 이름이 많다. 중구농협조합장과 구청장을 역임했던 김홍복 前중구청장, 바로 전 구청장을 했던 김홍섭 前중구청장, 현재 중구청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홍남 농수산과장 등이다. 사실 이분들은 김해김씨 삼현파의 후손들로 모두 친척들이다.

 

김해김씨 삼현파는 고려 원종 때 인물인 김관을 중시조로 하는 판도판서공파의 별칭으로, 김관의 5세손인 김극일과 김관의 7세손인 김일손, 그리고 김일손의 조카인 김대유, 세 현인이 한 집안에서 나왔다하여 붙여진 이름이이고 한다. 현재 운서동 진등말에(BMW드라이빙레인지 맞은편)김해김씨 사당이 있는데 이 사당은 김해김씨 삼현파 조상들을 제사 지내는 곳이다.

 

영종도의 결혼식 사진. (C)김홍일

 

 

영종 사람치고 내가 사진 안 찍어준 사람은 없지

 

거실 바닥은 사진들로 빼곡했다. 많은 사진들이 바닥을 채우고 있었지만 그것은 어르신이 찍어온 사진의 아주 일부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영종국민학교를 마치고 육지로 가서 해성중학교(현 인천남중학교)를 다니던 2학년 때 6.25전쟁이 났다. 인천기계공고를 졸업하고 서라벌예대에 진학했는데 사진과가 아니라 연기과였다고 한다.

 

농번기 맞은 영종도. 한 쪽은 경운기로 한 쪽은 소쟁기로 밭을 갈고 있는 풍경이 이색적이다. (C)김홍일

"등록금이 싸다고 해서 들어갔어. 졸업하고는 극장 사업도 하고, 영화배우들도 많이 만났었지. 집안에서 맞선을 보고 결혼하라고 해서 집사람을 만나 결혼하게 됐는데 용유도 면장 딸이였어. 그때 내 나이가 27살이였지 아내는 4살 아래였고, 당시에는 결혼이 꽤 늦은 편이였어. 아내는 곱게 자란 사람인데 시집살이를 힘들게 했지. 서울 가지 말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영종에 들어온거야."

 

어르신이 영종에서 정착한 것은 1960년대 중반이다. 삼목과 용유로 이어지는 길목인 운서 진등에 자리를 잡고 부인과 함께 잡화상을 했다. 양계장도 하고 경운기하나 사서 충청도로 일하러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사진관을 운영한 것은 영종동사무소가 있는 전소로 옮겨오면서 부터였다.

 

영종도의 장례식. 꽃상여로 운구하던 옛 장례식을 촬영했다. (C)김홍일

"사진을 배워서 사진관을 냈는데 영종에서만 사진 찍는 것으로는 먹고살기가 힘들었어. 그래서 한 30년 인천 자유공원으로 나가 사진 찍어주는 일을 했지. 옛날에는 카메라가 귀했잖아. 놀러 가면 으레 그곳에 있는 사진사에게 사진을 찍고는 했어. 그 일을 함께 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영종에서 살 수 있었던 거지."

 

당시 영종사람들은 그의 카메라 앞에서 모델이 되었다. 백일사진부터 증명사진, 결혼식, 환갑잔치, 영정사진 또 졸업과 입학 등 영종 사람들의 생활사가 담겨있다.

 

기록은 기억을 뛰어 넘는다

 

거실벽에 걸려있는 사진 또 바닥에 길게 펼쳐진 사진은 파노라마 기법의 사진들이다. 사진을 한장 한장 인화해 병풍처럼 붙인 풍경은 양쪽 끝까지 왜곡이 없이 평탄하다. 한자리에서 찍은 것이 아니라 그 풍경을 찍기 위해 장소를 이동하며 높이를 맞춰 찍은 것 같다. 지금이야 화질 좋은 디지털 카메라로 넓게 찍어 위아래를 잘라내면 어르신의 작품 같은 풍경이 나오지만 어르신은 모든 사진을 필름으로 찍었기 때문에 한 장씩 인화해 봐야 그 결과를 알 수 있다. 참 대단한 정성이다.

 

김홍일 사진가의 집에는 영종의 역사를 기록한 사진과 필름으로 가득차 있다.

구읍뱃터의 옛 풍경, 월미도의 모습, 을왕산이 멀쩡했던 을왕리해변, 삼목도에 산이 남아있는 풍경 등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 그의 사진에 담겨있다. 대규모 개발 공사 이전의 모습과 공사로 없어져 가는 또 새로운 모양으로 변화하는 영종의 시간을 기록해 둔 것이다. 영종과 한 섬으로 연결된 용유·삼목·신불도 등 곳곳을 돌아다니느라 오토바이도 세 번이나 바꿨다고 한다.

 

영종의 옛 초가집.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초가집과 염전의 풍경이 담겨져 있다. (C)김홍일

"공항이 들어서고 개발이 시작되니 옛 모습을 남겨보자고 생각했어. 사람들은 그깟 사진찍어 뭐에 쓰냐고 얘기도 많이 했지. 하지만 누군가는 이것을 남기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아. 영종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야 영종을 기억하겠지만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은 이곳의 옛 모습은 모르고 지금의 모습만 기억하겠지."

 

15년 전 어르신을 만났을 때는 꽤 많은 골동품들을 수집하고 있었다. 옛날 농기구부터 근대화시대에 사용했던 물건들까지 비닐하우스는 온갖 물건들로 빼곡했었다. 어르신은 지난해 인천 중구 영종역사관에 사진과 유물 1,000여점을 기증했다.

 

새참 나르는 가족들. 논두렁을 따라 새참을 나르던 풍경이 아름답다. (C)김홍일

"많이 모아두었는데 도둑이 들어 돈 되는 것은 죄다 훔쳐갔어. 비닐하우스에 보관하다보니 잘 관리도 안됐었지. 마침 영종역사관이 문을 연다니까 많은 사람들이 영종의 옛 모습을 보면 좋을 것 같아서 기증하게 됐지."

 

얼마 전 찾아간 영종역사관에서 어르신이 기증한 옛날 사진기를 볼 수 있었지만 수 십 년간 공들인 어르신의 노력과 수고에 비해서는 초라한 모습이었다. 인천발전연구원에서는 어르신이 소장하고 있던 운양호사건 때 쓰인 포탄과 고서 20여권을 빌려가 아직도 돌려주지 않고 있다고 한다.

 

황혼의 사진가에게 마지막 소망

 

많은 영종 사람들의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한 순간을 기록해 주었던 김홍일 어르신의 황혼은 아름답지 않다. 10여 년 전 아내가 분양 사기단에 속아 일산에 상가를 사게 됐는데 계약금과 중도금을 치르고 부족한 잔금을 대출받기 위해 어르신이 보증을 서게 됐다. 상가 건물 부도로 재산을 날리고 어르신은 보증 연대책임으로 영종에 있던 재산마저 다 날려버렸다. 10여년을 끌어온 송사로 지병을 얻은 아내는 오랜 기간 투병을 했고 지난해 먼저 세상을 등지게 되었다.

 

김홍일 사진가. 올해 86세가 되신 어르신은 아내가 상가 분양사기를 당해 10여년째 소송중에 있다. 홧병을 얻은 아내는 작년에 세상을 떠났고, 본인 소유의 작은 빌라가 있어 기초생활수급자로 공적보장을 받지 못해 사회안전망 밖에서 폐지를 주워 근근이 생활하고 있다.

 

 

혼자 남은 집에서 어르신은 혼자 식사를 해결하고 있고 난방도 못하는 상황이라 집안에서는 발이 시려울 정도였다. 관리비라도 마련할 요량으로 폐지를 줍는다고 하는데, 빌라 옆 한쪽에 빼곡한 골판지와 잡동사니들을 보니 안쓰러운 마음이 먼저 든다. 빌라의 주민들도 지저분한 모습에 등을 돌리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어르신의 사진에 대한 열정은 아직 식지 않았다.

 

"이전에 찍어두었던 장소들을 찾아서 지금 모습을 담아야하는데, 몸이 이래서 쉽지가 않네. 더 늦기전에 해 보고 싶은데. 그리고 이 사진들을 모아서 책을 하나 냈으면 좋겠어. 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영종을 더 기억할 것 아니겠나."

 

냉기 가득한 집을 나오면서 영종에 대한 사랑이 뜨거운 늙은 사진가의 마지막 소망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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