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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서

[리더의 책장] 오명숙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이사장이 추천한 '인생, 자기만의 실험실'

오명숙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이사장(전 홍익대학교 신소재화공시스템공학부 교수)

 

 

은퇴 전 마지막 학기였다. 연구실로 배달된 '인생, 자기만의 실험실'이란 책 표지에 금박으로 쓰인 영어 문구가 눈을 사로잡았다. 번역하면 '과학계의 성 편견을 뚫은 한 여성의 개인적인 여정' 이었다. 그 여성은 바로 콜레라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이며 미국 국립과학재단의 첫 여성 총재를 역임한 리타 콜웰이었다.

 

콜웰 박사는 이탈리아계 이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에서 성적이 우수한 여학생 대부분이 대학 진학을 포기하던 시절에 진학의 꿈을 심어준 선생님과 아버지 덕분에 과학자나 의사가 되는 꿈을 품고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에서는 여성에 대한 무관심과 차별에 영문학자가 될 뻔도 했다. 하지만 퍼듀대학에서 몇 안 되던 여교수의 세균학 강의에 매료돼 세균학과 유전학을 공부하고 결국 워싱턴대학에서 박사학위에 도전하게 된다.

 

콜웰 박사가 대학원 공부를 시작한 시절 미국 대학은 과학 하는 여성에게 매우 차별적이었다. 공공연히 '여학생은 받지 않는다' 또는 '여학생에게는 장학금을 줄 수 없다' 등으로 여성 과학자의 열정을 꺾은 교수가 많았다. 콜웰 박사는 이들을 실명으로 거론한다.

 

여학생들을 이끌어 줄 여성 교수는 거의 없었다. 그 시대 미국에서는 친족 등용 금지법이 있었고 대학들이 이 법을 유독 교수의 배우자들에게 적용했다고 한다. 같은 분야에서 남편과 함께 박사학위를 취득한 여성들은 연구 조교 등의 낮은 자리에서 연구했고, 운이 좋은 경우 강의를 맡았다고 한다. 이 법은 연구비 지급에도 적용돼 부부 과학자의 경우 남편이 연구비를 받으면 여성은 연구비를 받을 수 없었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많은 여성 과학자가 탁월한 업적으로 대학의 명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고 훌륭한 강의로 교육에 기여했음에도, 남편과 같은 교수가 될 수 없었다. 이 책은 이러한 여성들의 사례와 그들의 업적을 기록해 독자들과 공유한다.

 

박사과정 지도교수를 찾지 못해 또다시 영문학자가 될 뻔했던 콜웰이 훌륭한 과학자로 성장한데는 우수한 과학자를 알아보고 과학자로서의 길을 열어주고 경력의 단계마다 힘이 돼준 남성 멘토들이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그녀의 지도교수였다. 그는 신임 교수로 부임해 연구실을 꾸렸고, 연구실 조교로 들어간 콜웰을 해양세균학으로 인도하고 멘토가 돼 주었다.

 

이 책은 과학기술계에서 여성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고군분투한 여성 과학자들의 집단적인 노력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또한 여성들이 겪는 불평등과 차별을 없애려는 남성 리더들의 의지와 지지도 중요함을 강조한다. 특히 미생물 학회에서 첫 여성 회장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도 담겼다. 남교수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여교수 급여는 물론이고, 남교수보다 작은 실험실 배정 등 불평등했던 처우를 개선하고 여교수 비율을 배로 높인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의 사례도 매우 흥미롭다.

 

'인생, 자기만의 실험실', 머스트리드북, 432쪽, 1만8000원

세균학에 대한 문외한이지만 콜레라균에 대한 연구도 재미있게 읽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의 영향임이 틀림없다. 2001년에 미국을 뒤흔든 탄저균 사건에 유전자분석기술 등으로 사건 해결에 크게 기여하는 과정도 실감나게 기술돼 있다.

 

내가 미국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던 시절은 콜웰 박사의 시절과 아주 달랐다. 앞서간 여성 과학기술자들의 노력이 있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지금은 더욱더 변했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여성 교수 비율도 높아지고 여성 총장도 여러 명 있다. 국내에서도 연구재단의 여성 이사장이 탄생했고 공대 출신의 여성 교수가 4년제 종합대학의 총장도 역임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차별은 과거에만 존재할까? 국립과학재단 총재 후 바이오 기업을 세운 콜웰 박사는 대학과 연구소보다 더한 유리벽과 유리 천장을 경험했다고 토로했다. 콜웰 박사는 남성들이 지배하고 있는 벤쳐캐피탈 산업에서 여성 창업자 겪는 문제를 지적한다.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임을 강조한다. 여성 과학기술인에 대한 성 편견은 여전히 존재하고 여성 차별을 보여주는 많은 데이터와 사례가 있다. 유능한 인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국가적인 손실이다. 과학기술계에서 남녀가 동등하게 발전하고 경쟁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을 위한 다양한 제언으로 책은 마무리된다.

 

어떻게 보면 현시대 여성들은 좀 더 어려운 도전을 앞두고 있다. 여성에 대한 차별은 노골적이기보다는 미묘하며 암묵적이다. '여성의 성공은 왜 느릴까'의 저자인 밸리언이 지적했듯이 이러한 미세한 불이익이 쌓여서 커다란 차별로 돌아오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차별을 인지하고 없애려는 노력은 때로는 개인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때로는 여성들과 연대해, 때로는 치밀한 전략을 갖고 인내하며 끝없이 도전해야 함을 노과학자의 생생한 체험에서 배우게 된다.

 

오명숙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ET) 이사장(전 홍익대학교 신소재화공시스템공학부 교수)은 다음 글쓰는 이로 오세용 스마트브루어리 대표이사(전 SK하이닉스 사장)를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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