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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청 총장의 교육읽기] 눈을 뜨게 하는 교육, 눈을 감게 하는 교육

이현청 한양대 고등교육연구소장(석좌교수), 상명대·호남대 총장 역임

인간은 눈을 통해 보고 느낀다. 그러나 눈을 갖고도 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사람이 사랑의 눈을 갖지 못하면, 아름다운 것도 슬프고 비참하게 보일 수 있다. 반면, 사랑의 눈을 가졌다면 어두운 것도 밝은 모습이 돼 비치기 마련이다.

 

인간이 눈을 뜬다는 것은 모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은 끝내 눈을 뜨지 못하고 죽어가는 경우도 있고 눈을 반쯤 뜨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볼 것을 아예 보지 못하거나 미쳐 다 보지 못한 채 흐릿한 모습의 삶을 살다간 이들이다.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제각각이다. 매사를 부정적으로만 보는 눈이라면 '부정의 눈'이고, 지나치게 긍정적인 눈으로만 보는 눈은 '긍정의 눈'일 수밖에 없다.

 

소녀의 눈은 감성적 눈이라면, 소년의 눈은 야망의 눈일 수 있다. 어린아이의 눈은 상대적으로 천진한 눈이기에 우리는 어린아이의 눈을 사랑한다.

 

특히 누구에게나 필요한 눈은 '사랑의 눈'이다. 사랑의 눈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물을 볼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사랑하는 마음은 비단 이성간의 모습뿐만이 아니라 어떠한 대상일지라도 아름다움으로 보는 마음일 때 가능하다. 이유나 조건이 필요 없으며 보상이 필요치 않은 마음으로 보는 눈일 때 사랑의 눈이 될 수 있다. 사랑에 조건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소년이 사랑의 눈을 갖고 사는 그날부터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다. 세상의 눈이 욕심과 질투와 미움으로부터 해방될 때에 사랑의 눈이 될 수 있는 셈이다.

 

삶을 살면서 불행한 세 형태의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다. 첫 번째 형태는 자신이 남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자기를 외로운 존재로 생각하거나 자신을 비하하는 때도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불행한 형태의 인간은 사랑을 받고 있으면서도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다. 바로 두 번째 형태의 인간으로, 한없는 사랑을 받고 있으면서도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지속해서 사랑을 찾는 목마름이 끝없는 사람이다. 받고 있으면서도 받지 않는다고 느끼며 사랑의 비교 우위적 관점에 서 있는 이른바 '거부형 인간'이 이에 속한다. 자신을 불행하게 느끼고 자신을 고독한 존재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사랑을 받고 있고 사랑할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이 형태의 인간은 삶의 과정 중에서도 가장 불행한 형태다. 남에게 사랑을 주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받을 수도 없고 능력이 있음에도 베풀 수가 없다. 문제는 오늘날 우리의 삶에는 이런 세 번째 유형의 사랑의 문맹자(love illiterate)가 많다는 점이다.

 

아름다운 삶은 사랑하는 데 있고 사랑을 받고 있음을 깨닫는 데 있다. 넘치도록 많은 사랑과 도움을 받으면서도 사랑을 할 줄도 받을 줄도 모르는 사람은 어디에 있든 불행을 느낄 수밖에 없다.

 

사랑의 눈은 자기를 다스리고 자기를 가꾸는 데서 시작한다. 사랑의 눈을 갖고 자신을 사랑할 때 인간은 행복해지는 법이다. 그래서 교육은 사랑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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