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감독·분쟁조정 기능 분리 추진…개편안 윤곽
금감원 내부 "기민한 대응 불가, ELS 사태처럼 협업 어려워질 것"
저연차 직원 "비선호 조직 고정될 듯"…전문인력 이탈 우려도
금융소비자 보호 기능을 금융감독원에서 떼어내 별도 기구로 만들려는 정부의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가운데 금융감독원 내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책 집행과 감독, 분쟁조정 기능을 나눠 전문성과 책임성을 높이겠다는 구상이지만, 금감원 내부에선 "실제 소비자 보호는 약화될 것"이란 반발이 적지 않다. 검사·감독 기능이 분절되면 대형 금융사고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어려워지고, 조직 자체가 전문성과 유연성을 잃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17일 정치권에 따르면 정부는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편안 중 '소봉형'은 금융위원회를 금융감독위원회로 개편해 감독 정책 기능만 맡기고, 그 산하에 금융감독원과 금융소비자보호원을 병렬 배치하는 구조다. 금소원은 검사권 없이 소비자 분쟁조정과 민원 대응 등 보호 기능에 특화된 조직으로 운영된다. 반면 '쌍봉형'은 감독 기능을 아예 이원화해, 건전성 감독은 금감위·금감원이, 영업행위 규제는 금융소비자보호위원회와 금소원이 맡도록 하는 방안이다.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조사를 담당하는 증권선물위원회를 금소위 산하로 두는 안도 포함된다.
이러한 개편안들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서 출발했다. 금융위가 금융산업 육성과 감독 정책을 동시에 수행하면서 소비자 보호 기능이 상대적으로 소외됐다는 지적에 따라, 감독과 정책, 소비자 보호 기능을 나눠 전문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겠다는 취지다. 해외에서는 영국의 금융행위감독청(FCA), 호주의 ASIC 등은 소비자 보호 기능을 별도 기구가 수행하는 체계로 전환한 사례가 있다.
하지만 금감원 내부는 회의적이다. 금감원 국장급 관계자는 "소비자 보호는 감독과 검사, 인허가 부서 간 유기적 협업 위에서만 작동한다"며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겠다는 명분으로 기능을 잘라내면, 오히려 기민한 대응은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수조 원대 손실을 낳은 홍콩 ELS 사태는 금감원의 통합 조직 체계가 위기 대응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줬다. 당시엔 분쟁조정 인력뿐 아니라 검사국 인력 등 전사적으로 90명이 넘는 인력이 투입돼, 96%에 달하는 자율 배상 동의를 이끌어냈다. 내부에서는 "조직이 분리되면 이런 유기적인 협업이 불가능해지고, 사후 대응의 실효성도 크게 떨어질 수 있다"는 주장한다.
특히 금감원 내부 실무진은 금소원이 독립 조직으로 분리될 경우, 현장 대응력이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현재 금감원은 순환근무제를 통해 분쟁조정, 검사, 제재 등 다양한 부서를 경험하게 하며 업무 연계성과 금융 이해도를 높여왔다. 이 과정에서 복합 민원이나 디지털 기반 금융상품 관련 분쟁에도 부서 간 유기적 협업이 가능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조직이 쪼개지면 정보 교류가 단절되거나 협업 체계가 지연돼 실질적 소비자 보호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감원의 젊은 조사역들 사이에서는 회의적인 반응이 빠르게 확산되는 분위기다. 10년차 이하 조사역인 A씨는 "조직이 쪼개지면 사실상 '영원히 비선호 조직 고정'이라는 의미"라며 "검사도 못하고 전문성도 쌓을 수 없다면 조직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이번엔 민원 조직 갔으니 다음엔 다른 부서 배치해줄게'라는 식의 조율이 가능했지만, 조직이 나뉘면 애초에 그런 기회도 없어지는 것 아니냐"고 언급했다.
또 다른 저연차 조사역 B씨는 "변호사·회계사 등 전문자격증을 가진 직원들이 민원부서에 배치되게 되면 이직 고민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는 금감원 인재 유출과 직결된다"며 책상 앞이 아니라 실무 중심의 실효성을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르면 이달 말 금융감독체계 개편안과 함께 금감위 신설, 금감원·금소원 편제안, 금감위원장 인사 등을 일괄 발표할 방침이다. 금융당국 개편의 목적이 실질적 소비자 보호 강화를 위한 것이라면, 조직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실효성 있는 정보 공유, 검사 기능 연계, 내부 인사 연동 방안까지 포함된 '기능 중심 설계'가 함께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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