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L·한화 3500억 수혈…21일 3100억 필요
범용 쏠림·中 공급과잉…이익 3년새 96%↓
日식 규제완화·M&A 주목…정부 대책 임박
국내 3위 에틸렌 생산업체 여천NCC가 부도 직전까지 몰리며 석유화학 업계 전반에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번 사태는 범용 제품 중심 구조와 글로벌 공급 과잉이라는 석화 산업의 고질적 문제가 폭발한 단면으로 정부의 근본적 대책과 함께 해외 구조조정 사례에서의 교훈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여천NCC 주요 주주인 DL케미칼과 DL그룹 지주사 DL㈜은 전날 긴급 이사회를 열고 약 2000억 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결의했다. 조달 자금은 주로 여천NCC 운영자금 지원에 투입된다. 앞서 공동대주주인 한화솔루션도 지난달 말 이사회를 열어 1500억 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바 있어 이번 DL케미칼 유증으로 양 대주주가 총 3500억 원을 수혈하게 됐다.
여천NCC는 오는 21일까지 운영자금 3100억원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디폴트(채무 불이행)에 빠진다. 이달에만 약 1800억원의 차입금을 상환해야 한다. 1분기 연결 기준 현금과 현금성 자산은 1172억원에 불과하다.
여천NCC는 한화그룹과 DL그룹이 지난 1999년 에틸렌 기초유분 생산을 위해 5대 5로 출자한 회사다. 각각 1명씩 공동대표를 파견했고 이사회도 동수다.
◆'다음은 어디'…커지는 위기감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업계에는 '다음은 어디냐'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어 석화업계 회생을 위한 뚜렷한 돌파구가 필요한 상태다.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지난 2020년대 초반 코로나19 여파로 위생·일회용품 수요가 급증하고 중국의 에틸렌설비 증설이 지연되면서 '황금기'를 누렸다. 일부 기업은 분기 영업이익 6000억원, 연 매출 50조원도 돌파했다. 그러나 지난 2023년부터 글로벌 경기침체와 중국의 공급과잉이 겹치며 수익성이 급락했다. 최대 수출국인 중국이 합성수지·PVC 생산을 늘리자 수출 물량이 감소했고, 국내 빅4(LG화학·롯데케미칼·금호석유화학·한화솔루션)의 합산 영업이익은 지난 2021년 9조 원에서 2024년 327억 원으로 96% 급감했다.
정부와 업계 의뢰로 석유화학 재편 컨설팅을 맡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국내 석유화학 기업의 영업손익과 재무 상황을 고려했을 때 현재의 불황이 지속된다면 3년 뒤에는 기업의 50%만이 존속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일본사례를 참고해 국내에 적용해야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단순 감산 넘어 합병과 스페셜티 전환을
일본은 지난 1980년대 초 오일쇼크 여파로 석유화학 산업 수익성이 급락하자 정부 주도로 산업 구조 개편을 강력히 추진했다. 핵심은 '규제 완화와 기업 결합 촉진'이었다. 일본 정부는 공정거래법 적용을 석유화학 분야에 한시적으로 유예해 인수합병(M&A) 문턱을 낮췄고, 이 조치로 지난 1994년 미쓰비시화학, 1997년 미쓰이화학이 대형 합병으로 출범했다.
합병 후 일본 기업들은 범용 제품 비중을 줄이고 기술 장벽과 부가가치가 높은 스페셜티 제품 중심으로 전환했다. 미쓰이화학은 지난 2023년 PTA 공장과 2024년 PET 공장을 잇달아 폐쇄한 후 기초·그린소재 사업부를 오는 2027년 분사해 타 기업과 통합하는 방안을 추진 중에 있다.
일본 정부 역시 에틸렌 생산능력을 240만 톤 감축해 오는 2030년까지 430만 톤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일본식 구조조정은 단순한 감산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 주효했고, 주요 산업단지에서 기업 간 생산설비를 통합하고 운영 효율화를 추진해 비용 절감과 생산성 향상을 동시에 달성했다. 그 결과 수출·내수 비율이 1대 1로 안정됐고 스페셜티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했다.
현재도 동북아 내 공급과잉에 대응하기 위해 4개 산단에서 크래커 업체 간 통합 및 설비 합리화를 추진하면서 이를 통해 전체 생산능력의 37% 수준을 감축한다는 목표다.
국내 업계도 공급과잉 해소를 위한 구조조정 로드맵과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주요 건의 사항은 ▲공정거래법상 기업결합 제한 완화 ▲'위기산업 사업재편 특별법' 제정 ▲세제 인센티브·유동성 지원 ▲금융 규제 완화 등이다. 특히 특별법을 통해 기업 결합 제한과 정보 교환 금지를 일정 기간 완화,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사업 재편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정부도 석화업계 재편을 위한 대책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 부처는 이르면 이달 말에서 다음 달 중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이번 대책에는 연구개발(R&D) 지원과 사업 구조 전환 인센티브, 금융·세제 지원책이 포함될 전망이다.
한국화학산업협회 관계자는 "일본은 정부 주도로 규제 완화와 기업 결합을 촉진해 공급과잉을 구조적으로 해소했다"며 "단순 감산이 아니라 설비 통합, 범용 제품 축소, 고부가 스페셜티 전환까지 병행한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도 일본처럼 한시적인 법·제도 완화와 함께 구조조정 로드맵을 세워야 글로벌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Copyright ⓒ Metro. All rights reserved. (주)메트로미디어의 모든 기사 또는 컨텐츠에 대한 무단 전재ㆍ복사ㆍ배포를 금합니다.
주식회사 메트로미디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17길 18 ㅣ Tel : 02. 721. 9800 / Fax : 02. 730. 2882
문의메일 : webmaster@metroseoul.co.kr ㅣ 대표이사 · 발행인 · 편집인 : 이장규 ㅣ 신문사업 등록번호 : 서울, 가00206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2546 ㅣ 등록일 : 2013년 3월 20일 ㅣ 제호 : 메트로신문
사업자등록번호 : 242-88-00131 ISSN : 2635-9219 ㅣ 청소년 보호책임자 및 고충처리인 : 안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