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백화점들이 성장 정체를 돌파하기 위해 '이중 전략'을 본격 가동하고 있다. 하나는 해외 시장 개척, 또 하나는 식품관 경쟁력 강화다. 저출산·고령화, 온라인 쇼핑 확산 등 구조적 변화로 내수 기반이 약화되자 백화점들이 'K브랜드 수출 플랫폼'과 '맛집 유치전'이라는 투트랙을 통해 생존과 성장을 동시에 꾀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백화점은 오는 19일 일본 도쿄 파르코 시부야점에 '더현대 글로벌' 첫 매장을 연다. 국내 백화점이 일본에 정규 매장을 개점하는 첫 사례다. 단순 임대 매장이 아니라 현대백화점이 직접 국내 브랜드를 선별해 현지 소비자에게 소개하고 판매까지 지원하는 방식이다. 수출·판매·리테일 협상까지 전 과정을 총괄하는 'K패션 플랫폼'으로, 향후 5년간 일본 내 5개 매장을 순차적으로 열겠다는 계획이다. 내년 상반기에는 도쿄 오모테산도에 플래그십 스토어도 선보인다.
신세계백화점은 '하이퍼그라운드' 프로젝트로 K패션·K뷰티의 해외 진출을 지원한다. 태국 시암몰, 일본 한큐백화점에서 팝업을 진행한 데 이어, 현재는 파리 쁘렝땅 백화점에서 13개 K뷰티 브랜드와 대규모 팝업을 운영 중이다. 출범 첫해인 2023년 160여 개 브랜드가 약 50억 원 규모의 수주 상담을 성사시키며 성과를 거뒀다.
롯데백화점은 보다 직접적인 방식을 택했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 4개 점포를 운영하며 공격적인 확장에 나선 것이다. 2023년 9월 하노이에 개장한 '롯데몰 웨스트레이크'는 1년 만에 방문객 1000만 명을 돌파했고, 올해 2분기 매출은 전년 대비 25.1% 늘었다. 자카르타점에는 2500평 규모의 'K존'을 조성해 K컬처·한식·K뷰티를 한데 모아 차별화를 꾀했다.
업계는 현대·신세계처럼 '간접 진출'을 선택하면 초기 투자 부담이 적고 리스크 관리에 유리하다고 본다. 다만 성과가 파트너 협력 구조에 좌우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반대로 롯데처럼 '직접 출점'은 브랜드 존재감을 키우는 데 효과적이지만, 투자 비용과 리스크가 크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시장만으로는 성장 한계가 뚜렷해 3~5년 안에 해외 전략의 성패가 갈릴 것"이라며 "단순한 유행 추종이 아니라 K브랜드 성장의 거점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시장에서는 식품관이 돌파구로 주목받고 있다. 고물가와 소비 위축으로 매출이 줄자, 백화점들은 가격 장벽이 낮고 경험 소비 성격이 강한 식품을 앞세워 고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백화점 전체 매출에서 식품 비중은 2022년 12.7%에서 2024년 13.5%로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최근 지하 1층에 1200평 규모의 프리미엄 델리 전문관을 열었다. 일본 '교토 오니마루', 베트남 '블루 버터플라이', 벨기에 '고디바 크레페' 등 해외 인기 브랜드가 국내 첫 매장으로 들어왔고, 미쉐린 스타 셰프 김도윤의 '서연', 제주 숙성도 계열의 '화돈점정' 등 스타 셰프 매장도 자리 잡았다. 지난해부터 이어온 식품관 프로젝트의 최종 단계로 스위트 파크·하우스 오브 신세계·신세계 마켓까지 합치면 총 6000평 규모다. 신세계는 강남점을 '글로벌 미식 데스티네이션'으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롯데백화점은 '레피세리(Lepicerie)'를 앞세워 프리미엄 식품관 차별화에 나섰다. 2023년 인천점에서 시작한 레피세리는 현재 명동본점·강남점·평촌점 등으로 확대됐다. 비건·친환경 콘셉트와 즉석 요리존을 결합해 기존 대비 매출을 두 배 이상 끌어올렸고, 2030세대 매출은 90% 이상 증가했다. 인천점은 올해 3월 누적 방문객 1000만 명을 돌파하며 모객 효과를 입증했다. 롯데는 잠실 본관 등 핵심 점포로 확대해 '4조 백화점' 전략을 추진한다.
현대백화점은 델리코너에 팝업스토어 방식을 적용해 트렌드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지난해 중동점 식품관 리뉴얼을 통해 56개 신규 브랜드를 입점시켰으며, 더현대서울 등 주요 점포에서도 같은 전략을 펼친다. 한화갤러리아도 지난 5월 명품관 '고메이494'에 15개 맛집을 한꺼번에 열며 경쟁에 가세했다. 이 가운데 11개는 국내 최초 입점 브랜드로, 프랑스 프리미엄 버터 브랜드 '메종 라콩비에트' 베이커리와 유명 셰프 레스토랑이 대표적이다.
업계는 식품관 강화를 통해 체류 시간을 늘리고, 타 카테고리 매출로 이어지는 효과를 기대한다. 한 관계자는 "식품 구매 고객의 70~80%가 다른 매장에서도 소비한다"며 "맛집 유치와 팝업 운영은 단순 먹거리를 넘어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국내 백화점 업계가 내놓은 '해외 진출'과 '식품관 강화'는 단순한 매출 방어가 아니라 브랜드와 산업 전체의 성장 기반을 다시 설계하는 작업으로 내수 침체를 극복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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