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 공사비·공기 보장, 불법 하도급 근절, 영업정지·입찰제한 등 강력 제재 담아
"단순한 규제 강화보다 원칙대로 작업할 수 있는 여건 마련해야"
정부가 건설현장의 잇따른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해 적정 공사비·공기 보장과 강력한 제재를 골자로 한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내놨다. 사고 발생 이후 임원 줄사표와 사과문 발표가 반복되는 가운데 이번 대책이 구조적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지난 15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은 안전은 비용이 아닌 필수라는 인식을 전제로 반복되는 건설현장 사망사고의 근본 원인을 끊기 위해 마련됐다.
핵심은 발주자에게 적정 공사비 산정 의무를 부여하고 민간공사에도 공기 산정 기준을 포함시키는 것이다. 기존에는 공사 기간을 무리하게 단축하거나 비용을 줄이는 과정에서 안전 조치가 미흡했다. 정부는 이를 제도적으로 차단해 원칙대로 시공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겠다는 구상이다.
또한 불법 다단계 하도급을 막고 적격 수급인 선정 기준을 강화한다. 원도급사가 받은 금액이 재하도급 과정에서 절반 이하로 줄어들면 현장 안전비가 축소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바로잡겠다는 취지다. 재하도급으로 발생한 인명사고에 대해서는 등록 말소 등 강력한 제재가 검토된다.
중대재해가 반복되면 건설사는 영업정지·등록말소·공공입찰 제한까지 받을 수 있다. 이번 대책은 단순한 행정처분을 넘어 건설사의 안전관리 수준을 금융과 분양에도 반영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분양보증,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보증 심사에 안전도 평가를 반영해 안전관리가 부실한 업체는 자금조달과 분양에서 불이익을 받게 된다.
정부는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긴급 작업중지 명령권을 부여해 급박한 위험이 있는 현장은 즉시 중단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재해조사보고서를 공개하고 500인 이상 사업장부터 적용되는 안전보건공시제를 도입해 기업의 안전 투자 현황을 국민에게 알리도록 했다. 산업안전감독관도 중앙·지방에 걸쳐 대폭 증원하고 지자체에도 감독 권한을 위임해 현장 점검의 실효성을 높이기로 했다.
한편, 최근 건설현장에선 산재가 잇따랐다. 포스코이앤씨는 올해만 네 차례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지난달 광명∼서울고속도로 현장에서 외국인 근로자가 감전사고를 당한 직후 정희민 사장이 사퇴했다.
DL건설 역시 지난 8월 의정부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추락사고가 나자 임원진이 줄사표를 냈다. 이달에는 GS건설과 롯데건설이 각각 서울 성동구와 경남 김해 시공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하자 전사적 안전점검과 사과문 발표로 대응했다.
업계에서는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사퇴와 사과가 반복될 뿐 현장 안전문화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형식적 책임 인정이 아니라 비용과 공기를 안전에 맞게 재조정하는 구조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반응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적정 공기와 공사비를 함께 다뤘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는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공사비와 공기가 실무에 반영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현장에서 체감되기 전까지는 논란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실행 단계의 한계를 지적했다.
현실에서는 조합원조차 공사비 절감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강해 저가 수주가 유리한 상황이 반복된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개선되지 않으면 실행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 연구위원은 "안전 확보에 필요한 비용은 결국 사회 전체가 감수해야 할 사회적 비용이라는 인식이 커져야 한다"며 "제도가 아무리 정교하게 만들어져도 현장에서 이를 지킬 수 있는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대책이 단순한 규제 강화에 그치지 않고 현장에서 원칙대로 작업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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