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봄비가 매섭게 쏟아지던 어느 3월. 사연자는 치매가 부쩍 심해진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가기 위해 택시를 불렀다. 재개발 지역에 있는 오래된 빌라 앞에서 오래도록 잡히지 않는 택시를 기다리던 두 사람은 강동석 택시기사를 만났다. 연신 '춥다'는 말을 되뇌던 할머니는 택시에 실례를 했고, 사연자는 '죄송하다'며 머리를 숙였다. 강 기사는 얼굴 한번 찌푸리지 않고 트렁크에서 바지를 꺼내 건넸다. "바지가 많이 크지만, 천천히 운행할 테니 조심히 갈아입혀주세요"라는 말과 함께. 그는 병원 앞에 도착해 할머니의 손을 꼭 잡으며 이야기했다. "어르신 길가에 꽃이 많이 피었어요. 얼른 나으셔서 손녀랑 꽃구경 가셔야죠"라고. 저도 모르게 눈물을 왈칵 쏟아낸 사연자는 이 일을 오래도록 잊지 못하고 마음에 두고두고 새기고 있다가 카카오모빌리티의 '도로 위 히어로즈'로 강 씨를 추천했다.
#2. 지난 5월21일 저녁 8시. 전주 평화동 큰 사거리에서 신호를 대기하던 장복선 대리기사는 핸드폰을 들고 4~5차선을 지나 반대편으로 가려는 어린아이를 발견했다. 큰 사고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 그는 차량 밖으로 뛰쳐나가 아이를 안고 뛰었다. 아이의 부모님은 보이지 않았다. 대리 업무를 수행 중이었던 그는 눈에 보이는 치킨집에 사정을 설명하고 아이를 맡기며 부모님을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경찰이 도착하기 전 아버지가 먼저 가게를 찾아왔다. 알고 보니 아이에겐 장애가 있었고, 아버지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사라진 것이었다. 천만다행으로 아들을 찾게 된 부모는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경기는 어렵고, 살기는 팍팍하며, 세상은 각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하루도 무탈히 저물어간다. 당신이 안온한 일상을 유지할 수 있던 이유는 어쩌면 우리 곁에서 묵묵하게 조용히 제 할 일을 해내는 영웅들이 있기 때문일지도.
지난 17일 '도로 위 히어로즈' 시상식장을 찾은 <메트로경제신문>은 치매로 편찮은 어르신을 따뜻하게 응대한 강동선 택시기사와 보호자 없이 4차선 위를 떠돌던 7세 아이를 구한 장복선 대리기사, 총 두 명의 도로 위 히어로들을 만나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생면부지의 타인을 망설임 없이 도울 수 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강동석 택시기사(이하 강)=아흔이 넘은 노모를 모시고 있어 어머님 생각이 많이 났다. 제가 한 행동이 특별한 선행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이렇게 칭찬해주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아마 다른 기사님이었어도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장복선 대리기사(이하 장)=현재 대리기사 일과 태권도장 운영을 병행해오고 있다. 올해 세 자녀가 모두 대학생이 되면서 학비와 생활비가 많이 필요해졌다. 낮에는 관장으로, 밤에는 대리기사로 뛰면서 가족을 위해, 그리고 제자들에게 '책임지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이들에게 올바른 일을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다 보니 백미러로 아이를 봤을 때 빨리 구해서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본능적으로 그냥 바로 보이자마자 문을 열고 내려서 아이를 구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다. 고된 일을 하는데도 언제나 선뜻, 기꺼이 남을 돕는 마음의 여유와 따뜻함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강=택시업의 본질은 '서비스'와 '봉사'다. 지난 20년간 택시를 운행하며 승객들로부터 불친절한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이는 반드시 사라져야 할 문화다. 오죽하면 승객들에게 부당한 일을 겪으면 신고하라고 말할 정도다. 이러한 마음가짐이 몸에 배어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나왔다. 마침 트렁크에 여벌의 바지가 있었고, 이를 건넨 건 제게는 정말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장=아마 제가 '무도인'이자 아이들을 가르쳐서 남을 선뜻 도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오랫동안 대리운전 일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쳐왔다. 늘 아이들에게 '올바르게 행동하라'고 말한다. 평소에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 바른길을 걸으려고 노력했던 게 저도 모르게 마음의 힘이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요즘 사람들은 제 한 몸 건사하기 힘들다며, 단 몇 분도 손해 보기 싫어 남을 돕는 일을 꺼린다. 우리 모두가 다 '일상 속 히어로'가 될 방법이 있다면.
강=저도 사업에 실패하는 등 순탄한 삶을 살지는 않았다. 택시 운전이라는 것이 하루종일 일에만 집중해야 해서 다른 무언가를 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저는 제가 매일 하는 일, 즉 사람을 대하는 것에서부터 마음가짐을 달리하려고 한다. 거창한 방법보다는 이렇게 각자 자리에서 맡은 바를 다하는 마음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장=가끔 유튜브에서 어르신이 무거운 짐을 옮기는 등 어려운 상황을 연출하고 시민들의 반응을 살피는 영상들을 본다. 편집된 좋은 모습 뒤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냥 지나쳤을까' 하는 생각에 잠긴다. 그러면서 저 자신에게도 '만약 내가 저 상황이라면 망설이지 않고 도왔을까' 라고 질문하게 된다. '일상 속 히어로'가 되는 특별한 방법이 있기보다는, 우리 주변의 힘없는 이들을 보고 망설이지 않는 사회가 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분들이 그런 상황에서 외면하지 않고 손내밀어 주는 용기를 내줬으면 한다.
-택시기사라는 직업이 단순한 운송업이 아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일이라고 느낀 적이 있나.
강=이 업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다. 10년 넘게 화물 운송업을 하다가 사정이 어려워져 택시 운전을 시작했다. 처음엔 울면서 일할 정도로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큰 보람을 느낀다. 목적지까지 한마디도 안 하는 분도 있고, 반대로 제게 웃음을 주거나 때론 스트레스를 주는 승객분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
장=주취자에게 폭행당하는 등 힘든 순간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운전만 하는 일이었다면 결코 얻지 못했을 소중한 경험도 있다. 한번은 연세 지긋한 사장님을 손님으로 모셨는데, 그분이 제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거다. 지금이라도 꼭 새로운 걸 시작하라"며 진심으로 격려해줬다. 그 말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이 같은 경험을 할 때 이 업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특별한 일이라고 느끼게 된다.
-매일 도로 위에서 승객들을 만나는 동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장=대리운전 일을 하다 보면 승객에게 무시당하는 등 속상한 일을 겪을 때가 있다. 하지만 저는 이 일이 분명 보람 있는 서비스업이라고 생각한다. 간혹 힘든 일이 있더라도 '고맙다'라고 말해주는 승객들을 생각하며 자부심을 느꼈으면 한다. 저 역시 태권도장 운영이 어려워져 이 일을 병행하고 있다. 저처럼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동료 대리기사님들과 다른 소상공인 사장님들 모두 힘냈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도로 위 히어로즈'가 된 것을 축하드리며, 마지막으로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한다.
강=부족한 가장이자 아빠로서 가족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크다. 그럼에도 '거짓말이나 나쁜 짓을 하지 말고 바르게 살자'는 약속을 지키며 잘 자라준 아이들에게 정말 고맙다. 이젠 다들 장성해 제 앞가림도 잘하고 있으니 대견할 따름이다. 앞으로 각자의 배우자와 함께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을 보는 게 가장 큰 바람이다.
장=늘 함께 고생해주는 아내에게 가장 고맙고 감사하다. 그리고 아빠를 묵묵히 믿고 따라주는 우리 세 남매에게도 정말 고맙다. 아빠의 직업을 부끄러워할 수도 있을 텐데, 오히려 아빠를 인정해주고 존중해주는 아이들의 마음이 너무나도 고맙고 대견하다. 직업엔 귀천이 없다. 대리기사든 태권도 관장이든, 어떤 일이든 정직하고 성실하게 하면 그게 바로 가치 있는 일이다. 아이들에게 '세상은 노력하는 사람을 절대 외면하지 않는다'는 것을 제 삶으로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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