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명곡을 명곡으로 만들어야 겠다는 욕심이 있다. 서양음악의 역사 처럼 우리나라에서도 내려오는 창작 국악을 연주해 전통화 시키는 데에 기여하고 싶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임혜정(32·여) 씨는 앞으로의 목표를 묻는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임혜정씨는 유럽, 미국, 싱가폴, 베트남, 인도, 필리핀, 태국, 대만 문화교류연주와 한국문화원 초청 연주에 다수 출연한 대금 연주가다.
대금은 부드러운 저음부터 맑고 장쾌한 고음까지 풍부한 음색을 가지고 있어 음악의 중심을 잡는 조율역할과 다채로운 멜로디를 이끄는 역할을 한다.
임 연주가는 대금에 대해 "관악기는 연주자의 호흡과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악기이기 떄문에 떨리는 숨결까지 표현이 된다"며 "연주자마다 소리를 내는 방식이 다르고, 그 차이가 음악의 개성이 된다"고 말했다.
◆ 묻혀 있던 가락을 다시 무대로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을 묻자 임 연주가는 주저없이 지난 7월 국립국악원에서 '지: 금'이란 주제의 독주회를 꼽았다. 알 '지'에 첨대 '금'이라는 한자로 대금을 알다라는 이름으로 공연된 지: 금은 2020년 이후 5년 만에 연 독주회다.
임 연주가는 "2020년에는 창작 곡만으로 채웠지만, 올해는 달랐다"며 "민속악 장르를 공부하고 묻혀져 있는 원석 곡, 한 번만 연주되고 안된 곡 등을 찾아 대중하고 후배들한테 들려주기 위해 마련했다"고 했다.
특히 올해 독주회는 서용석 대금산조 가락을 45분 길이의 긴 산조로 복원·연주한 것이 핵심이다. 과거 영상 자료를 참고해 산조 합주에서 정형화되지 않았던 가락을 다시 살피고, 형태로 재구성했다.
◆ "느껴지는 연주"
임 연주가의 연주 인생에서 또 하나의 전환점이 된 공연은 4년간 호주와 교류하며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협업)한 공연이다. 이 공연은 호주의 '레스트리스 댄스 시어터'와 한국의 '29동 댄스 시어터'의 안무, 그리고 창작 국악이 더해졌다. 호주의 레스트리스 댄스시어터와 한국의 29동 댄스시어터는 장애·비장애 예술가가 함께 만드는 이 시대의 감각과 질문을 몸으로 탐구하는 무용단체다
임 연주가는 "2020년도와 2021년도는 코로나19로 줌(Zoom)을 통해 회의했다"며 "안무를 짜면 그에 맞춰 창작곡을 더하는 식으로 준비했다. 장애와 비장애인이 함께 있었기 때문에 영어 통역과 한국어 통역, 수화 통역이 함께해 늦어지는 부분이 있었지만, 이것이 콜라보레이션이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임 연주가는 2022년과 2023년의 현장공연에서 보여지는 연주보다 느껴지는 연주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연에 장애, 비장애 등 다양한 관객이 오셨는데, 한 시각장애인이 '악기의 울림이 몸을 타고 느껴졌다'고 말해주셨다"며 "'보여지는 것을 떠나서 느껴지는 연주를 하는 것이 중요하구나'라고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 한국문화의 확장, 현장에서 체감
임 연주가는 해외 문화교류연주와 한국문화원 초청 연주를 통해 한국문화가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현장에서 체감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해외에 나갈수록 한국문화에 대한 인식이 분명히 달라졌다는 걸 느낀다"며 "과거에는 낯설어하거나 거리감을 두는 시선도 있었지만, 이제는 먼저 다가와 질문을 건네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임 연주가는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단순한 소비를 넘어, 학업과 언어로까지 확장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 음악과 문화를 계기로 한국 대학에 진학하려는 외국 학생들도 늘고 있고, 한국말을 굉장히 잘하는 분들도 많아졌다"며 "예전에는 통역이 꼭 필요했다면, 이제는 기본적인 대화는 한국어로 가능한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임 연주가는 이러한 흐름이 앞으로 국악을 포함한 한국 전통예술 전반에 긍정적인 기회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제는 한국문화에 대한 기본적인 호감과 이해가 형성돼 있다"며 "그 위에서 국악을 소개하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고 느낀다"고 했다.
◆ 창작국악의 기본은 '전통'
임 연주가는 올해의 목표와 창작음악을 하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는 질문에 '전통'이란 단어를 꺼냈다. 창작음악에 대한 관심이 커진 지금의 환경이 반갑지만, 그만큼 기본이 되는 전통에 대한 학습이 충분히 병행되길 바란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전통은 고수해야 할 것이고, 계승해야 할 것도 맞다. 그렇다고 곧이곧대로만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라며 "다만 전통을 충분히 공부한 뒤에 창작으로 가야, 그 음악도 오래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 연주가는 창작 국악이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아가는 과도기에 있다고 보았다. 이미 서양음악의 어법을 차용한 창작곡은 많지만, 대금 독주 레퍼토리는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그래서 지금 세대의 연주자들이 '꺼내는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서양음악은 20세기 초반에 만들어진 레퍼토리를 지금도 연주하는 것 처럼 한국 창작음악도 언젠가는 그렇게 연주될 수 있어야 한다"며 "그러려면 지금 누군가는 정리하고, 남겨야 한다"고 했다.
임 연주가는 앞으로 국악을 설명의 대상이 아니라 경험하는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는 "국악도 전문가들 외에도 대중이 함께 들을 수 있는 음악으로 확대되길 바란다"며 "보여지는 국악이 아니라 경험하는 국악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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