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식음료(F&B) 업계가 과거 높은 인기를 누렸으나 여러 사정으로 자취를 감췄던 '시그니처 메뉴'들을 잇따라 재출시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복고(Retro) 열풍이나 감성 자극을 넘어 팬덤 고객의 요구를 경영에 적극 반영하는 '고객 경험 중심 마케팅'의 일환으로 보인다. 특히 고물가와 경기 침체 장기화로 신제품 개발 리스크가 극도로 높아진 상황에서 이미 검증된 브랜딩 자산을 활용해 가성비와 성공 확률을 동시에 잡으려는 리스크 관리 전략으로도 해석된다.
할리스는 시그니처 블렌디드 음료인 '할리치노 3종'을 전격 재출시했다. 특히 2010년 출시 이후 강력한 팬덤을 형성했던 '다크 포레스트 할리치노'는 아마레나 체리와 초콜릿의 조합을 디저트 한 잔으로 시각화해 단종 이후 끊임없는 재요청을 보낸 핵심 고객층을 완벽히 흡수하고 있다. 여기에 '블루베리 요거트 할리치노'와 '애플망고 할리치노'를 한층 업그레이드된 레시피로 선보이며 라인업을 보강했다.
투썸플레이스는 연간 70만 잔에 육박하는 판매고를 올렸던 메가 히트 아이템 '로얄 밀크티 쉐이크'를 지난 3월 단종 이후 전격 복귀시켰다.
투썸플레이스는 타 브랜드와 달리 '기존 레시피 변형 없음'을 선언하며 과거의 깊고 부드러운 풍미를 100% 재현했다. 이는 변동성이 높은 시장 환경 속에서 충성도 높은 오리지널 마니아층의 '록인(Lock-in)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폴 바셋은 시각적 요소와 계절감을 결합한 고도화 전략을 택했다. 과거 큰 인기를 끌었던 라벤더 아이스크림을 중심으로 'Lavender Purple'이라는 컬러 테마를 구축, 단순 단품 재출시를 넘어 '라벤더 아이스크림 블루베리 라떼', '우베 카페라떼' 등 보랏빛 비주얼 라인업을 확장했다. 이는 시각적 가치를 중시하는 MZ세대의 SNS 인증샷 소비(Veblen Effect) 트렌드를 정조준한 결과다.
이 외에도 달콤커피는 2022년부터 2025년까지의 누적 판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검증된 '봄 시즌 베스트 4종'을 재출시하며 시즌제 마케팅을 강화했고, 배스킨라빈스는 메가 IP인 포켓몬스터와 협업했던 '피카 피카 피카츄' 및 '너로 정했다! 이브이'를 다시 선보이며 키덜트 시장 공략을 이어가고 있다.
식음료업계가 '단종 메뉴'를 다시 꺼내 드는 이유는 R&D 투자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콘셉트의 신제품 개발에는 대규모 R&D 비용, 원자재 공급망 확보, 초기 마케팅 비용이 수반되지만 성공 확률은 매우 낮다. 반면, 이미 시장성이 검증된 단종 메뉴의 재출시는 기존 레시피와 인프라를 재활용할 수 있어 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다. 이는 비용 효율성을 극대화해야 하는 고물가 시대의 수익성 방어 전략이다.
또 기업이 고객의 재출시 요청에 응답하는 형태는 소비자에게 '내가 브랜드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효능감을 부여한다. 이는 단순한 소비자를 넘어 브랜드의 자발적 프로슈머를 육성하는 계기가 되며, 장기적인 록인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F&B 업계 전문가들은 이 같은 단종 메뉴 재출시 트렌드가 향후 '단순 감성 마케팅'에서 '데이터 기반 큐레이션'으로 진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신제품 개발 없이 과거 자산에만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 브랜드의 혁신 이미지가 고갈되고 장기적으로 고령화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하며, "전통 시그니처의 안정적인 매출 기반 위에 트렌디한 신제품 개발을 병행하는 '포트폴리오 밸런스'를 유지하는 기업만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뤄낼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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