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급·고용안정 갈등 끝내 못 풀어
카카오 창사 이후 첫 본사 파업 돌입
노조 "29일 로그오프 데이" 추가 쟁의 예고
성과 보상과 고용안정을 둘러싼 갈등을 봉합하지 못한 카카오 노동조합이 창사 이후 첫 파업에 돌입했다. 노조는 오는 29일 출근 후 업무를 중단하는 '로그오프 데이'까지 예고하며 장기전에 돌입했다.
10일 오전 경기 성남시 판교역 광장. 검은색 티셔츠와 흰색 우산을 맞춰 든 카카오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하나둘 광장에 모여들었다. 조합원들은 "투쟁"을 외치며 결의를 다진 뒤 판교아지트를 출발해 웹젠과 NHN 사옥 인근을 지나 유스페이스 광장까지 약 800m를 행진했다. 점심시간을 앞둔 판교 테크노밸리에는 집회 장면을 지켜보거나 휴대전화로 촬영하는 직장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경찰 추산 500여명의 조합원이 참여한 이날 행진은 단순한 임금 인상 요구 시위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조합원들이 든 피켓에는 '고용안정 쟁취', '무책임한 경영진 퇴진'이라는 문구가 적혔고, 곳곳에서 "공정한 보상", "책임 경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성과급 문제에서 시작된 갈등이 고용안정과 경영진 책임론으로 확대됐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카카오지회 크루유니언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4시간 부분파업에 돌입했다. 2006년 카카오 창사 이후 처음 있는 본사 파업이다. 특히 이번 집회에는 카카오뿐 아니라 카카오페이, 카카오엔터프라이즈, 디케이테크인, 엑스엘게임즈 등 5개 법인 노조가 함께 참여했다. 노조는 개별 법인의 임금 협상을 넘어 카카오 공동체 전체의 보상 체계와 고용 정책을 바로 세우기 위한 공동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파업의 직접적인 배경은 올해 임금·단체협약 교섭 결렬이다. 카카오 노사는 성과 보상 구조와 임금 인상률 등을 두고 협상을 이어왔지만 끝내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노조는 성과급 규모를 영업이익의 13~14% 수준으로 확대하고,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은 성과급 산정 기준에서 제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사측은 노조의 요구안을 수용할 경우 회사 경영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날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의외로 '성과급'이 아니라 '고용안정'이었다. 노조는 최근 조직 개편과 계열사 효율화, 사업 재편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구성원들의 고용 불안이 커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AI 중심 사업 재편과 비용 효율화가 추진되는 상황에서 경영 실패의 부담을 노동자에게 떠넘겨서는 안 되며, 투명한 보상 체계와 안정적인 노동 환경이 함께 보장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승욱 카카오 노조 지회장은 이날 집회에서 "경영진의 실책과 잘못으로 회사 상황이 악화하고 있지만 그 책임을 누구도 지지 않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며 "공동체 전체 구성원의 고용안정과 책임 있는 경영을 위해 공동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가 의미 있는 안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오는 29일에는 '로그오프 데이'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로그오프 데이는 직원들이 정상적으로 출근한 뒤 업무를 하지 않는 방식의 쟁의행위다. 노조가 단순한 하루 파업을 넘어 새로운 형태의 집단행동 계획을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파업이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장기적인 노사 대치 국면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불거진 성과급 산식 논쟁과 보상 체계 개편 흐름도 IT 업계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특히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 연동 성과급 모델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카카오 내부에서도 보다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보상 체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는 분석이다. 다만 플랫폼 기업과 제조업은 사업 구조와 수익 모델이 달라 단순 비교는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이번 사태가 주목받는 이유는 카카오가 AI 중심 사업 재편과 조직 효율화에 속도를 내고 있는 시점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최근 카카오는 조직 체계를 개편하고 계열사 효율화 작업을 이어가고 있지만, 내부에서는 이 과정이 고용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누적돼 왔다. 이날 판교를 가로지른 500여명의 행진은 AI 전환의 이면에 쌓여온 구성원들의 불안과 불신이 거리로 표출된 상징적인 장면으로 읽힌다.
다만 우려했던 카카오톡 등 주요 서비스 장애는 발생하지 않았다. 사측은 파업에 대비해 비상 대응 체계를 가동하며 서비스 안정화에 집중했다. 카카오 관계자는 "비상 상황에 대비해 단체행동 기간 서비스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을 최소화하고 최소 대응 인력을 구성하는 등 실시간 대응 체계를 구축했다"며 "조정 절차 이후에도 노조와의 대화 창구를 열어두고 있으며 조속한 합의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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