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시장의 상생과 약자 보호라는 명분을 내걸고 입안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이 본격적 시행과 동시에 산업 현장을 뒤흔드는 '대기업 하청 교섭 폭탄'이 되고 있다. 법안 통과 당시 경제계가 한 목소리로 우려했던, 대기업 원청을 향한 하청 노조의 연쇄 교섭 요구와 파업 리스크가 단순한 기우가 아닌 엄연한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더불어사는희망연대본부 LG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가 제기한 '교섭 요구 사실 미공고 시정 신청'을 수용했다. 이에 따라 LG유플러스는 하청업체 노동조합과 직접 테이블에 마주 앉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법원이 아닌 노동위원회의 결정만으로도 원청의 사용자성이 폭넓게 인정되면서, 기업들은 준비되지 않은 다중 교섭의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게 되었다.
SK하이닉스의 하청업체인 피엔에스로지스 노조 역시 원청을 상대로 성과급 차별 철폐를 주장하며 공식적인 교섭 요구안을 전달했다. SK하이닉스는 그동안 초과 이익분의 일부를 활용해 협력사 직원들에게 1인당 500만~600만 원 상당의 상생장려금을 지급하는 등 대·중소기업 간 격차 해소를 위한 자발적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노란봉투법이라는 법적 무기를 쥔 하청 노조는 이제 시혜성 장려금이 아닌, 원청의 영업이익과 연동된 정당한 'N% 성과급 분배'를 권리로써 요구하고 나섰다.
대기업의 이익을 직접 나누자는 이들의 요구는 기존 노사 관계 패러다임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실제로, 국민의힘 이종배 의원실에 따르면 노란봉투법이 지난 3월 10일 시행된 뒤 6월 5일까지 431개 원청이 1137개의 하청 노조로부터 교섭 요구를 받았다. 이들 대부분은 고용노동부 산하 노동위원회에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해달라며 중재 신청을 제기한 상태다. 법 시행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산업계 전반이 거대한 교섭 요구의 파도에 직면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기업 현장의 노무담당자들은 고충을 토로한다. 하청 노조와의 교섭은 본사 직영 노조와의 협상보다 구조적으로 몇 배나 더 까다롭기 때문이다. 한 원청 기업에 얽힌 하청업체의 수와 노조의 종류가 워낙 다양해, 설령 대표교섭 노조를 선정한다 하더라도 개별 노조의 파편화된 요구사항을 조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호소한다. 여기에 하청 노조들이 '성과급 차별 철폐'와 같은 이슈를 전면에 들고 나오면서, 원청 노무팀의 업무는 해법이 없는 '풀기 불가능한 숙제'가 되어버렸다.
이로 인한 인력과 비용의 급증은 기업의 본원적 경쟁력을 갉아먹는 새로운 경영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많은 대기업들이 다발성 노사 분쟁에 대응하기 위해 노동 전문 변호사나 노무사 채용을 늘리고 있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끝없는 교섭과 소송 비용, 그리고 교섭 결렬 시 닥쳐올 파업으로 인한 생산 차질 리스크는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키고 고용 시장을 얼어붙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모든 법과 제도는 지속 가능성과 공동체의 안정을 지향해야 한다. 지금처럼 원·하청 간의 계약 관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법적 불안전성을 야기하는 구조 하에서는 기업도, 하청 노동자도 공멸할 수밖에 없다. 정부와 국회는 현장의 혼란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 사용자 정의의 범위를 보다 명확히 규정하고, 무분별한 교섭 요구로 인한 경영 마비를 막을 수 있는 세부 가이드라인 제정 등 전면적인 제도적 보완책 마련에 즉각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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