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 씨(47·여)는 어느 날 회사에서 일하던 중 휴대전화로 끔찍한 전화를 받았다. "엄마 나야, 나 지금 납치됐어!" 전화 속 목소리는 다급하고 겁에 질려 있었다. 순간 딸의 목소리 같다는 생각이 든 이 씨는 머리가 하얘졌다. 곧바로 다른 남자가 전화를 바꿔 받더니 험악한 목소리로 으름장을 놓았다. "지금 네 딸을 우리 조직이 붙잡고 있다. 당장 1시간 안에 5000만원을 준비해. 경찰에 알리면 딸부터…." 이 씨는 공포에 질려 "제발 아이 다치게 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애원했고, 상대는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큰 일 난다고 협박했다. 패닉 상태에 빠진 그녀는 정신을 차릴 겨를도 없이 통장에 있던 돈을 인출해 지시된 계좌로 송금했다. 하지만 전화 내용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그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자녀납치를 빙자한 보이스피싱 범죄였다. 그는 한동안 분을 참지 못하며 "평소에는 나름 침착한 편인데, 그 순간에는 너무 무서워서 아무 생각도 안났다"고 토로했다.
사기범에게 조종당하지 않으려면 위험 신호가 올 때 잠시 멈추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사기범의 의도대로 일종의 심리적 인질 상태가 되어 버리면 안된다. 전화든 문자든 나를 깜짝 놀라게 해 당황하게 만드는 연락을 받는다면 한 번 심호흡하고 일단 멈춰 볼 타이밍이다. 어렵겠지만 순간 깊게 숨을 고르고, 곧장 대응하지 말고 하나, 둘, 셋을 세면서 심호흡을 한 후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사실 확인을 해야 한다. 한 고령의 피해자는 은행 창구 직원의 기지 덕분에 사기 이체 직전에 피해를 면한 일이 있었다. 직원이 불안해 보이는 고객을 수상히 여겨 말을 붙이고, 상황을 알아차린 덕분이다. 이처럼 본인이 침착함을 잃었다고 느껴지면 주변의 제3자를 끌어 들이는 것이 좋다. "잠깐 전화를 끊고 확인해 보겠다"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사기범의 기세는 한풀 꺾인다. 사기범들은 절대 피해자에게 생각할 틈을 주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그런 요구 자체가 이미 수상한 신호인 셈이다.
공공기관을 사칭하는 범죄 역시 긴급 상황을 가장해 이뤄진다. 예를 들어 "검찰청 ○검사입니다", "경찰청 사이버수사대입니다"라고 권위있는 말투로 전화를 걸어 와서는 굳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당신 명의의 계좌가 범죄에 연루되었다. 지금 당장 본인 명의의 모든 돈을 안전계좌로 옮겨 두어야 한다." 일반인 입장에선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다. 수사기관이라며 소속을 사칭하고 있으니 선뜻 의심하기도 어렵다. 실제로 한 피해자는 서울중앙지검 검사를 사칭한 전화를 받고 130만원을 이체했다. 또 사기범이 시키는 대로 편의점에서 상품권 200만원 어치를 사서 핀 번호를 넘겨주기까지 했다. 결국 그는 총 330만원의 피해를 본 뒤에서야 사기를 당했음을 인지했다.
경찰이나 검찰 등 공식 기관은 어떤 경우에도 개인에게 돈 이체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상식을 기억해야 한다. 비슷한 전화를 받더라도 '이건 사기다'라는 판단을 훨씬 더 수월하게 내릴 수 있다. 만약 순간적으로 속아 넘어가 돈을 송금했다 하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즉시 112나 해당 금융회사에 연락해 지급정지를 요청해야 한다. 극도의 공포와 스트레스 상황에서 개인이 적절히 대응하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범죄에 대비해 가족과 미리 암호 질문을 정해 두거나 위치 확인 앱 등을 활용해 진위를 가리는 방법을 마련해 두는 것도 좋다.
전문가들은 "긴급한 상황을 연출하더라도 확인 전에는 절대 송금하지 말라", "전화로 돈을 요구받으면 반드시 가족이나 경찰과 상의하라" 등 다양한 예방 수칙을 강조하고 있다. 순간의 침착함과 용기가 사기를 피하는 최선의 방패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사기 프로파일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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