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 피해 전광판 보이는 실내로
멕시코전 0-1 패배…시민들 “아쉽지만 남아공전 기대”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린 뒤에도 광화문 일대 열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19일 오전 서울 도심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2026 북중미월드컵 거리응원은 체감온도 33도에 이르는 무더위 속에서 치러졌다. 뜨거운 햇볕 아래 응원 방식도 달라졌다. 전광판 앞 중앙 응원석을 지키는 대신 카페와 건물 입구 그늘로 흩어지는 시민이 많았다. 여름철 폭염이 잦아지는 가운데 대표팀을 응원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은 무더위와 먼저 싸워야 했다.
◆무더위 속 열린 '브런치 월드컵'
이날 경기는 평일 오전에 열린 '브런치 월드컵'이었다. 경기 시작 전부터 광화문 일대는 붉은색으로 채워졌다. 오전 8시 30분께 메인 무대가 위치한 응원구역은 이미 관람객으로 가득 채워졌다. 뒤로 이어진 B-2 구역에도 시민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붉은악마 유니폼을 입은 시민들부터 손흥민, 이강인의 소속팀 유니폼을 입은 팬들까지 광장은 경기 전부터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축구 유니폼 대신 기아 타이거즈와 롯데 자이언츠 등 빨간색 야구 유니폼을 맞춰 입고 온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더위에 대비한 응원 장비도 곳곳에서 보였다. 일부 시민들은 모자처럼 쓸 수 있는 양산을 쓰거나 종이로 만든 응원 모자를 착용했다. 얼굴의 열기를 식히기 위해 양 볼에 쿨링패드를 붙이고 경기를 보는 이들도 있었다. 손에는 생수와 부채가 들려 있었다.
◆"잘 보이는 곳이냐, 잘 들리는 곳이냐"
시민들은 '잘 보이는 곳'과 '잘 들리는 곳'을 고민하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경기를 즐겼다. 건물 그늘에는 화면이 잘 보이지 않아도 광장의 함성과 응원가를 함께 들으며 분위기를 느끼려는 시민들이 모였다.
세종문화회관 입구 그늘에서는 대학생 3명이 양산을 펴고 아이패드로 경기 생중계를 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좋은 응원석 자리를 잡았지만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그늘로 피신했다고 했다.
대학생 A씨(25)는 "스크린으로 직접 경기를 보지는 못해도 함성 소리가 들리고 응원 열기를 느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지난주 체코전은 시험기간이라 눈치를 보며 봤지만, 이번주 종강해 오늘 경기는 마음 편히 보러 왔다고 했다.
가족 단위 관람객도 광화문을 찾았다. 40대 후반의 김씨는 중학생 아들 둘과 함께 전남 광주에서 서울까지 올라왔다. 아이들은 현장체험학습을 신청하고 이날 하루 서울에서 묵은 뒤 다음 날 아침 광주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했다.
김씨는 "2002년 월드컵 열기를 직접 느껴봤기 때문에 아이들도 그 분위기를 느껴봤으면 해서 데리고 왔다"며 "날씨가 더운데도 사람들이 많아서 놀랐다"고 말했다. 인터뷰 도중 손흥민이 슈팅을 시도했지만 멕시코 골키퍼에게 막히자 김씨는 시민들과 함께 아쉬운 탄성을 내지르기도 했다.
창밖으로 KT 건물 전광판을 볼 수 있는 스타벅스 광화문점에서는 경기 시작 전부터 응원들로 붐볐다. 현장의 함성은 잘 들리지 않더라도 큰 화면으로 경기를 보려는 시민들이 자리를 선점했다.
카페 직원은 2층 입구에서 고객들에게 좌석이 있는지 물으며 출입을 관리하기도 했다. 더위를 피해 카페로 들어가려는 인파가 몰려 혼잡을 막기 위한 조치로 보였다.
경기가 시작될 즈음에는 통행 관리도 강화됐다. 경찰은 전광판 주변에 몰린 시민들을 향해 연신 "멈춰 있지 말고 이동하세요"라고 안내했다. 이동 중인 시민들이 전광판을 보기 위해 멈춰 서면 보행 흐름이 막히고 안전사고 위험이 커져서다. 경찰과 현장 관계자들은 시민들이 한곳에 몰리지 않도록 이동을 유도했다.
◆"아쉽지만 잘 싸웠다…다음 남아공전은 이길 것"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이날 멕시코에 0-1로 패했다. 전반은 팽팽하게 흘렀지만, 후반 초반 한 차례 실수가 승부를 갈랐다. 후반 5분 한국 진영에서 김승규가 공중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이기혁과 충돌했고, 흐른 공을 멕시코 미드필더 루이스 로모가 발리 슈팅으로 연결해 골망을 흔들었다. 한국은 이후 오현규, 조규성 등 공격 자원을 투입하며 동점골을 노렸지만 끝내 득점에 실패했다.
경기 종료 뒤 시민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시민들은 경기 막판까지 전광판을 바라보며 동점골을 기대했지만, 종료 휘슬이 울리자 아쉬운 표정으로 자리를 정리했다.
스타벅스 창가에서 경기를 지켜본 직장인 2명은 손흥민과 이강인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광화문 인근 직장에 다닌다는 이들은 오전 반차를 내고 거리응원 현장을 찾았다.
직장인 A씨는 "경기가 잘 보이는 응원석에서 보려고 했는데 너무 더워서 그냥 일찍 카페로 들어왔다"며 "무승부로 가고 있던 상황에서 실수로 공을 떨어뜨리며 골을 내준 장면이 가장 아쉬웠다"고 전했다.
한국에서 유학 중인 프랑스인 빅토르 씨(20)는 FC서울 린가드 유니폼을 입고 광화문을 찾았다. 빅토르 씨는 "한국 응원 열기가 이렇게 뜨거울 줄 몰랐다"며 "크레이지(crazy)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패배를 아쉬워하면서도 경기력 자체는 긍정적으로 봤다. "오늘은 아쉽게 졌지만 한국이 잘했다고 생각한다"며 "잘 극복하고 준비하면 다음 남아공전은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식지 않은 열기, 더 중요해진 안전관리
이날 거리응원은 기후위기 시대 야외 응원의 과제도 함께 남겼다. 과거 거리응원이 한곳에 모여 대형 전광판을 바라보는 방식이었다면, 이날 시민들은 더위를 피해 카페와 그늘, 건물 입구로 흩어져 각자의 방식으로 경기를 지켜봤다.
대표팀은 한 골 차 패배로 아쉬움을 남겼지만 거리 응원 현장의 시민들은 더위 속에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남은 것은 다음 경기다. 승리의 기운이 모이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안전하게 응원할 수 있는 현장 관리도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
한국은 멕시코전 패배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조별리그 3차전을 준비한다. 홍명보호는 오는 25일 멕시코 몬테레이 스타디움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과 A조 마지막 경기를 치른다. 해발 1500m 이상 고지대에서 생활해온 대표팀이 비교적 평지에 가까운 몬테레이에서 어떤 경기력을 보일지도 관전 포인트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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