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약 없는 정상화...PB상품·치킨으로 버텨
2000억 자금줄 공방 속 불편함은 직원·손님 몫
경기도 파주에 한 홈플러스 매장. 멀리서도 시계탑 달린 커다란 5층 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지점은 2016년 개점 당시, 지역 최대 규모의 복합 쇼핑몰이라는 점을 내세우며 화려하게 문을 열었다. 주말이면 가족 단위 방문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며 지역 상권의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10년이 흐른 현재, 건물의 상징이었던 시계탑은 멈춰 섰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현저히 줄었다.
지난 22일 오전 11시,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1층 한 쪽 덩그러니 비어 있는 공간이 눈에 띄었다. '지금까지 없던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는 홈플러스의 슬로건이 무색하게, 현장에서 마주한 모습은 깊어지는 경영난을 고스란히 노출시켰다.
◆상추·달걀 자리에 '냄비와 국자'
홈플러스가 오프라인 경쟁력 확보를 위해 사활을 걸고 추진해 온 '메가푸드마켓' 식품관. 신선도가 생명인 달걀, 채소, 샐러드 등이 진열되어 있어야 할 신선 코너 냉장 매대에 뜬금없이 주방용품과 국자, 도마 등 식기류들이 줄지어 진열돼 있었다. '텅 빈 매장'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매대를 채우려 애쓴 현장의 간절함과 처절함이 묻어났다. 인근에 거주한다는 방문객 A씨는 "한달만에 왔는데 신선실에 냄비와 국자가 진열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제품의 다양성도 크게 후퇴했다. 밀키트 코너는 홈플러스의 자체 브랜드(PB)인 '심플러스(simplus)'와 '홈밀(homemeal)' 제품으로만 빼곡했다. 음료 코너 냉장고에도 심플러스의 1000원 아메리카노와 복숭아 음료만 한 줄로 진열돼 있었다. 일반 라면 코너에는 특정 몇 가지 제품만 매대를 간신히 채우고 있었다. 30대 주부 B씨는 "집이 가까워 자주 왔었는데 요즘은 살 게 없어 발길이 뜸해졌다"며 "가격 메리트는 있지만, 구하기 힘든 상품도 아니고 '불닭볶음면' 같은 대중적인 라면조차 없다"고 아쉬워했다.
델리(즉석식품) 코너는 6990원 치킨만이 빈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홈플러스의 대표 상품인 '당당치킨'이다. 현장의 델리 코너 직원은 "다른 제품은 만들어 진열해도 잘 나가지 않지만, 치킨은 찾는 손님이 꽤 있어서 요새는 치킨 한 종류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 켜진 계산대는 단 1곳
총 15개에 달하는 메가푸드마켓의 계산대 중 실제로 불이 켜져 있고 직원이 상주하는 곳은 단 한 곳뿐이었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대부분의 고객을 키오스크(셀프 계산대)로 유도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오래 근무했다는 직원 C씨는 "예전에 비해 손님이 줄었다"며 "평일 낮에는 한산하지만 저녁이나 주말은 상황이 조금 낫다"고 전했다. 최근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6~7월 영업 정상화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런 이야기가 돌고 있다는 것은 들었다. 아직 지점 차원에서 확실하게 내려온 지침이나 계획은 없다"며 "상황이 조속히 좋아지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건물 곳곳에 영업을 중단한 매장들도 있었다. 홈플러스 몰 1층 식당가 내부에 리뉴얼 준비 중인 매장 두 곳은 오픈 예정일이 언제인지조차 적혀 있지 않았다.
◆입점 업체, 매출 걱정에 시름
한때 대형마트의 큰 경쟁력이었던 '원스톱' 쇼핑 환경의 메리트도 사라졌다. 그간 홈플러스는 마트 내에 다양한 입점업체를 유치함으로써 집객 효과를 최대화 했다. 입점업체 또한 마트 고객을 점포에 유치함으로써 윈-윈(Win-Win) 효과를 얻었다. 홈플러스의 상황이 악화하면서 입점업체들 또한 큰 어려움에 빠졌다.
홈플러스에 따르면 3000천여 곳의 입점 업체 중 60~70%가 소상공인이다. 이들은 지난해 3월 기업 회생 신청 이후 최소 20~30%까지 매출이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트의 경영난이 고스란히 입점 소상공인들의 생존 위기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며 소상공인들의 생계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여전히 자금난 '안개 속'
홈플러스의 현장 정상화 노력 뒤에는 여전히 심각한 자금난이 자리하고 있다. 홈플러스는 지난달 7일 하림그룹 계열사 NS쇼핑과 슈퍼마켓 사업 부문인 홈플러스익스프레스를 1206억원에 매각하는 영업양도 계약을 체결했다.
메리츠증권은 최근 입장문을 내고 "MBK는 메리츠에 추가 자금 지원을 요구하면서도 최대주주로서 최소한의 보증 제공은 거부하고 있다"며 MBK의 책임 있는 결단을 촉구했다.
홈플러스 또한 메리츠증권을 향해 2000억원 규모 DIP의 신속한 집행을 거듭 요청했다. 홈플러스 측은 "회생에 필요한 유동성이 확보된다면 홈플러스는 충분히 정상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자금줄을 쥔 이해관계사들의 팽팽한 줄다리기 속에서 애가 타는 건 결국 현장의 직원과 고객이다. 당장 생계가 걸린 직원들의 고용 불안과 마트를 이용하던 소비자들의 불편이 언제쯤 해소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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