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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차세대 배터리 전쟁의 시간, 우리에겐 얼마나 남았나

지난달 21일, 중국 베이징. CATL이 '수퍼 테크데이' 행사장에서 꺼내 든 숫자는 우리 배터리 업계를 얼어붙게 했다. 10%에서 80%까지 단 3분 44초. 완충에 가까운 98%까지도 6분 27초. 영하 30도 혹한에서도 10분 안에 충전이 끝난다. 거기에 반고체 수준의 신형 배터리를 탑재한 세단은 한 번 충전으로 최대 1500km를 달릴 수 있다. "한마디로 공포였습니다" 국내 배터리 업계 한 전문가가 솔직하게 털어놓은 말이다. 기술 격차만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한중간의 격차가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숫자는 냉정하다. 올해 1~2월 중국을 제외한 미국·유럽 등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국내 배터리 3사의 점유율은 28.3%로 전년 동기 37.1%보다 8.8%포인트 하락했다. 반면 같은 기간 CATL과 BYD의 합산 점유율은 36.7%에서 44.2%로 7.5%포인트 상승했다. 판이 기울었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이미 판 자체가 엎어졌다. 뒤집어진 판에서 한국업체들이 꺼내 든 반격 카드는 전고체 배터리다. 삼성SDI는 최근 인터배터리 전시회에서 전고체 브랜드 '솔리드스택'을 공개하고 내년 하반기 휴머노이드 로봇용 소형 전고체 배터리 양산을 목표로 제시했다. 그러나 전고체가 시장 주도권을 바꾸려면 얼마나 걸릴까. 업계 안팎의 답은 한결같다. 지금부터 최소 10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양산 자체도 이제 막 시작 단계인데 초기에는 가격이 너무 높아 일부 프리미엄 모델과 로봇에나 쓰일 것이다. 그나마 숨통을 틔워주는 건 미·중 갈등이다. 미국과 유럽이 중국 배터리를 밀어내면서 한국 기업이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지정학이 기술 격차를 메워주진 않는다. 외부 환경에 기댄 생존 전략에는 유효기간이 있다. 배터리는 반도체와 함께 한국 제조업의 마지막 보루다. 그 보루가 흔들리고 있는데 산업 현장에서는 정작 정부 손길이 닿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높다. 연구개발 세액공제 확대, 핵심 광물 공급망 확보, 차세대 배터리 국가 R&D 로드맵 수립 등 말은 무성했지만 속도가 없다. 기업이 뛰는 동안 정부는 제자리걸음이다. 중국이 국가 자본과 정책을 총동원해 배터리 생태계를 키우는 동안, 우리 기업들은 홀로 버텨왔다. 그 한계가 지금 점유율 숫자로 나타나고 있다. 기업 하나의 기술력으로 국가 대 국가의 싸움에 이길 수는 없다. 시간이 부족하다. 국가가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원관희기자 wkh@metroseoul.co.kr

2026-05-05 12:55:17 원관희 기자
[기자수첩] 프라다를 입은 악마에게 묻는 조직윤리

지난 2006년 개봉한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속편,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가 공개된다. 20년 전 영화지만 대중은 여전히 편집장 '미란다(메릴 스트립)'의 카리스마와 비서 '앤디(앤 해서웨이)'의 화려한 변신을 추억한다. 유명 패션잡지 런웨이를 배경으로 치열한 커리어의 세계를 그린 이야기 속에서 정작 오늘날 관객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또 다른 비서 '에밀리(에밀리 블런트)'의 얼굴이다. 에밀리는 파리 패션위크를 목표로 버티고 있지만 패션에는 관심 없다던 굴러들어온 돌 앤디가 그 기회를 빠르게 차지한다. 에밀리는 '나는 내 일을 사랑해'라고 외치며 조직의 가치관을 내면화하는데 앤디는 조직을 수단으로 여긴다. 결국 앤디는 런웨이를 떠나며 '미란다 비서 출신'이라는 명성을 활용해 원하는 곳으로 점프한다. 이때 영화 제목은 현실의 문장으로 다시 읽힌다. 악마'가' 프라다를 입는다. 현실도 종종 그렇게 흘러간다. 앤디의 서사가 영리한 '이직 성공 사례'가 된다.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에밀리들은 '대체 가능한 소모품'으로 격하되곤 한다. 앤디는 파리 출장을 가로챈 미안함을 명품 옷 몇 벌로 표현하고 에밀리의 입꼬리가 씰룩이는 장면이 연출된다. 에밀리가 원하는 것은 물질보다 자신이 쏟은 열정에 대한 인정과 성취였을 테지만, 노력과 결과가 어긋난 순간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 사회 역시 본질적인 갈등을 소모품적 보상으로 봉합하고 있지는 않는지 되돌아보게 하는 대목이다. 5월에는 각종 기념일이 있어 연휴가 이어지는 동시에, 휴무를 가능하게 하는 필수 근로 또한 뒷받침되고 있다. 이러한 노동의 비대칭성이 불합리한 것은 아니다.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경제 선순환을 위해 누군가는 일해야 하며 남들이 쉴 때 두 배로 뛰어아 하는 직군도 존재한다. 다만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현장 사수는 기회를 쫓아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된 앤디들이 아니라 자기 자리에 뿌리 내린 에밀리들이라는 점이다. 문제는 존중 결핍이다. 조직이 효율성에 중점을 두는 것은 숙명이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에 대한 예의를 놓치고 있지는 않는가 다시금 짚어본다. 앤디가 떠난 후의 에밀리는 K직장인의 단면이다. 프라다 뒤, 보이지 않는 근로의 소외를 정당화하지 않는 것이 20년 만에 다시 만날 악마들에게 요구하는 최소한의 조직 윤리다.

2026-04-29 13:53:17 이청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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