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박찬욱 감독 "파격·금기? 내러티브 위한 선택일 뿐"(인터뷰)
보고 나면 궁금증이 가득 생기는 영화가 있다. 박찬욱(52) 감독의 영화가 그렇다. 지난 1일 개봉한 '아가씨'는 박찬욱 감독 스스로 "모호한 구석이 없는 명료한 이야기"라고 소개하는 작품이다. 그만큼 전작들보다 한결 명확한 구성과 주제를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는 동안 각각의 장면에 대한 크고 작은 궁금증이 생긴다. 그런 점에서 '아가씨'는 변함없는 '박찬욱표' 영화다. '아가씨'는 영국 작가 새라 워터스가 빅토리아 시대를 무대로 쓴 소설 '핑거스미스'를 일제강점기 이야기로 각색한 작품이다. 박찬욱 감독은 거대한 재산을 상속받게 된 아가씨 히데코(김민희)와 모종의 음모로 히데코의 하녀가 된 숙희(김태리), 그리고 이들을 조종하는 백작(하정우)와 후견인 코우즈키(조진웅)의 이야기로 원작을 새롭게 구성했다. 원작이 통속적인 추리극이라면 '아가씨'는 시대와 권력, 성별에 맞선 소수자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사람들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 '파격' 또는 '금기'라는 표현을 자주 붙인다. '아가씨'가 그리는 동성애, 그리고 영화 말미에 인물들이 보여주는 행동에도 누군가는 그런 수식어를 붙일 것이다. 그러나 박찬욱 감독은 "말썽을 일으키기 위해 파격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긋는다. 그는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 그대로 영화를 만들 뿐이다. 영화는 관객이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때로는 감독의 의견을 참고할 필요도 있다. 박찬욱 감독과 나눈 이 인터뷰가 '아가씨'를 조금 더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참고서 역할을 할 것이다. [b](* 영화 '아가씨'와 '올드보이'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b] ▶ '핑거스미스'의 영화화는 2013년 할리우드 영화 '스토커' 개봉 때부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 '핑거스미스'는 '스토커'를 찍기 전부터 하기로 했던 작품으로 당연히 고려 중인 차기작 중 하나였어요. 하지만 '스토커'를 찍은 뒤 바로 할 생각은 없었어요. 다른 작품을 준비하고 있었으니까요. (기자 주: 박찬욱 감독은 '스토커'를 마친 뒤 할리우드에서 '남자 밖에 안 나오는 무지막지하게 폭력적인' 서부극을 준비하고 있었다.) ▶ 아무래도 '스토커' 이후에 '아가씨'가 개봉하게 돼 여성의 이야기를 계속 하는 느낌도 있습니다. 감독님의 의도는 아니었던 거네요. - 남성영화를 먼저 할 생각이었는데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됐어요. 그래도 반복적이라는 기분은 들지 않습니다. 서부극 시나리오를 오래 만졌거든요. 남자들의 난폭한 세계를 충분히 갖다 온 기분이었어요. 그래서 '핑거스미스'의 영화화 작업을 시작할 때는 신선한 기분이 들었죠. ▶ 언론시사회 때 '핑거스미스'에 끌린 이유로 소설의 이야기 구성을 꼽았습니다. 그런데 원작 소설을 보면 이야기 구성 말고도 감독님이 끌린 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여자들의 이야기 때문은 아니었나요? - 그런 것도 있었어요. 그리고 원작에서 모드와 수의 첫 정사 장면이 멋있었어요. "네가 좋아"라고 하면서 덤벼드는 게 아니잖아요. "남자들이 원하는 게 뭐지?"라며 모드('아가씨'의 히데코 캐릭터)가 유혹을 하면, 수('아가씨'의 숙희 캐릭터)가 "남자들은 말이죠"라며 가르쳐주는 식으로 유혹에 넘어가죠. 게임 같아서 재미있었어요. 영화 속 숙희 입장에서는 백작과 히데코를 결혼시키기 위해 하는 일이 자기를 숨기는 행위가 되죠. 아가씨를 속이려 저택에 들어왔지만 그 순간에는 자기 자신도 속이면서 유혹에 넘어가는 것, 그게 참 교묘하고 멋있는 설정이라고 생각했어요. ▶ 원작과 달리 영화는 '여성들의 전복적인 이야기'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 여성의 이야기라고 봐도 되지만 좀 더 넓게 보자면 약자들이 승리하는 이야기에요. 무언가를 조종하는 위치에 있다고 여긴 코우즈키와 백작이 뒷통수를 맞는 이야기니까요. 이건 여성의 승리라고 봐도 되고 약자의 승리라도 봐도 되죠. ▶ 원작이 있는 작품은 원작의 설정에 얽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공동경비구역 JSA' '올드보이' '박쥐' '아가씨' 등 감독님 작품은 원작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원작 각색의 비결은 무엇인가요? - 저에게 원작이라는 것은 그냥 경험과 같아요. 예를 들어 '친구와 싸우고 절교했다'는 경험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쓴다면 그걸 있는 그대로 쓰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런 것과 똑같다고 봐요. 신문에서 본 살인 사건에 영감을 받아 시나리오를 쓸 때도 마찬가지죠. 그런 것처럼 만화나 소설도 개인의 경험이나 뉴스 기사와 같은 소스(source)라고 생각해요. 그게 미국에서 말하는 '소스 머티리얼(source material)'이고요. 그래서 각색 과정에서 원작과 많이 달리지는 것 같아요. 그런 작업은 '원작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과는 다른 문제라고 생각하고요. 활자와 영상은 매체가 다르니까요. 그러면서도 원작에서 정말 정수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가급적으로 유지하려고 해요. 다만 원작을 각색할 때 투자자나 제작자, 배우들 모두 원작에 대한 다른 그림이 있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도 있어요. 그래서 원작이 있는 작품을 할 때는 원작만으로 투자를 받거나 캐스팅을 해서는 안 돼요. ▶ '아가씨'를 작업하면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나요? - '아가씨'는 그런 일은 없었어요. 공동 제작자인 임승용 대표가 먼저 원작을 일제강점기 배경으로 바꾸자고 제안했으니까요(기자 주: 박찬욱 감독은 처음에는 '핑거스미스'를 영국 배경으로 외국 배우를 캐스팅해 찍을 생각이었다). 각색 과정에서도 같이 시나리오를 쓴 건 아니지만 아이디어를 주고받았서 내용을 다 알고 있었고요. 그리고 각본 작업이 끝나기 전에는 투자를 받지도 않았고요. ▶ 일제강점기를 다뤄야 한다는 부담감은 없었나요? - 어떤 부담을 이야기하는 건가요? ▶ 보통 일제강점기가 배경이 되면 민족적인 부분을 생각하게 되니까요. 그런 부분이 걱정되지 않았을까 싶었거든요. 그리고 처음 예고편이 등장했을 때 왜색이 짙은 거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고요. - 일제강점기를 독립운동 이야기로만 다루라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각도에서 그 시대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하니까요. 그리고 '아가씨'는 그런 민족적인 문제를 완전히 배제하고 쓴 시나리오가 아니었어요. 일제강점기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을 완전하게 갖고 쓴 각본이죠. 프로덕션 디자인도 거기에 입각해서 진행됐고요. 독립투사가 영화에 나오지 않을 뿐이죠. 친일파는 어떤 존재냐, 그리고 변태적이고 사악한 친일파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니까요. 물론 저는 이 영화를 항일영화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어요. 다만 일제강점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분명하게 갖고 만든 영화라는 건 말씀드릴 수 있어요 ▶ '아가씨'를 작업하면서 일본영화를 참고하지는 않았나요? - 그런 건 없었어요. 물론 구로사와 아키라, 오즈 야스지로, 나루세 미키오 감독 등의 작품을 좋아하지만요. 김민희가 연기한 역할이 히데코가 된 건 나루세 미키오 감독 영화의 단골 주연 여배우였던 타카미네 히데코에서 따온 거예요. 일본 여자 배우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죠. 타카미네 히데코는 나루세 미키오 영화에서 50~60년대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진취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으로 나와요. 그래서 그 이름을 썼어요. 숙희는 '핑거스미스'의 수에서 빌려온 이름이고요. ▶ 백작과 코우즈키의 이름은 어떻게 지었나요? - 처음 영화를 기획할 때는 무대가 조선이 아닌 일본이었어요. 코우즈키는 일본 사람이라는 설정이었고요. 백작은 조선에서 머슴의 자식으로 태어났지만 대한제국 황실회 멤버라고 사기치는 사람이라고 설정했고요. 당시에 황실회 멤버들은 작위를 받았거든요. 그래서 백작이 됐어요. 코우즈키는 그 시대의 귀족적인 이름을 고민하다 윗 상(上)자와 달 월(月)를 써서 '코우즈키(上月)'가 됐어요. 이름의 느낌도 좋았고 영화에 달도 많이 나와서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 '아가씨'는 아나모픽 렌즈로 촬영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기자 주: '아가씨'는 1.33:1의 화면 비율을 가진 표준 렌즈보다 약 두 배 가까이 화각이 넓은 아나모픽 렌즈를 사용해 촬영했다. 아나모픽 렌즈로 촬영할 경우 카메라 앵글에 담기는 좌우 공간이 늘어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 정확히 말하면 '필름 룩'을 만들기 위해서였어요. 가능하면 필름으로 찍고 싶었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게 불가능하거든요. 아직 미국이나 유럽은 필름으로 영화를 찍는 게 가능한데 말이죠. 디지털 촬영으로 필름 느낌을 주기 위해 여러 가지 수단이 필요했어요. 그중에서 아나모픽 렌즈로 큰 효과를 봤죠. 어떤 나라의 어떤 관객이 봐도 필름으로 찍었다고 생각할 정도의 성취를 해냈으니까요. ▶ 쿠엔틴 타란티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처럼 필름으로 영화를 촬영하고 싶은 건가요? - 네. 그런데 그들처럼 상영까지 디지털로 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찍는 건 필름이 좋지만 상영은 디지털이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 제작보고회 당시 "'아가씨'는 해피엔딩을 지닌 명확한 이야기의 영화"라고 소개해 조금 놀랐습니다. 설마 진짜일지 의심도 갔고요(웃음). - 설마 그렇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거짓말을 할까요(웃음). ▶ '아가씨'를 결말이 명확한 이야기로 만든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 히데코에게 슬픈 결말, 또는 모호한 결말을 주고 싶지 않았어요.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너무나 끔찍한 학대를 받았고 엄청나게 고통을 받았으니까요. 그래서 이런 행복한 결말 말고는 상상을 할 수 없었어요. 히데코에게 행복한 결말은 그녀의 사랑이 이뤄지는 것이고, 그건 덩달아 숙희도 행복해지는 것이니까요. ▶ 전작들에서 모호한 엔딩을 취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 그게 더 성숙한 태도라고 생각해요. 인생에 대해 조금 더 진실되게 접근하는 시각이죠. 세상에 그렇게 명료하게 선과 악, 행복과 불행을 가를 수 있는 게 어디 있겠어요? 그러니까 모호함이 더 진실에 가까운 접근이죠. 다만 '아가씨'는 전작보다 더 장르적인 성격이 강하고 동화 같은 분위기라서 이런 결말도 허용된다고 생각했어요. ▶ 감독님 영화에는 '파격' '금기' 등의 표현이 늘 따라 붙습니다. 이런 표현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 그런 면이 있겠지만 오해 받고 싶지 않은 것은 '파격적이려고 그렇게 한다'는 것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거예요. 비슷한 말로 '화면이 아름답다'고 할 때 그냥 아름답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거죠. 내러티브의 내적인 필요를 위한 아름다움이라면 서슴지 않고 한다는 것이죠. 무언가 문제를 일으키거나 말썽을 일으키려고 하는 건 아니에요. '올드보이'도 근친상간이 등장하게 된 이유가 처음부터 '금기의 영역에 도전해야지'라는 생각 때문이 아니었어요. '왜 이우진이 오대수를 풀어줬을까? 죽을 때까지 가둬놓지 않고 왜 풀어준 걸까?'를 고민하는데 너무 이상한 거예요. 그 이유를 찾다 보니 '딸의 성장까지 기다린 건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하게 됐고요. 제가 만약 겁이 많았다면 거기에서 그쳤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적어도 제가 생각한 것은 피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아가씨'에도 동성애 장면이 아주 강도 높게 묘사돼요. 강도 높은 섹스 장면이죠. 영화에서 두 여자가 서로 좋아하는 장면이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그걸 하다가 말면 그냥 피해가는 것이죠. 예를 들어 액션영화에서 총을 뽑았는데 바로 다음 장면에서 사람들이 다 죽어 있는 영화가 어디 있겠어요? 총을 뽑았으면 총을 쏘아야죠. 어떤 영화들은 섹스 장면을 입맞춤만 하고 '이튿날 아침'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죠. 하지만 저는 그럴 수는 없다는 거예요. ▶ 코우즈키와 백작의 결말은 어떻게 구상하게 된 건가요? - 코우즈키는 화풀이가 필요한 상태에요. 자신의 컬렉션이 다 망가졌으니 더 살아갈 이유가 없는 폐인이 된 거죠. 최소한의 화풀이라도 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책에 미친 사람이니까 제책도구를 사용한 화풀이를 생각하게 됐어요. ▶ 지하실의 문어는 어떤 의미인가요? - 어린 히데코가 처음 지하실에 내려갔을 때 무언가를 보고 겁에 질리잖아요. 그게 아주 심각한 트라우마가 돼 저택에서 탈출할 엄두를 못 내죠. 저도 사실 그게 뭔지 모르는 채 시나리오를 썼어요. 그래서 미술감독이 애가 탔죠. 그걸 구현해야 하는 건 미술감독이니까요(웃음). 그래서 같이 고민하다 문어가 여자 몸을 감고 있는 춘화를 발견했어요. 정말 역겹고 끔찍했죠. 그래서 그것을 상상을 실제로 보여주면 어떨까 싶었어요. 그럼 잔인하고 징그러운 행동을 실제로 안 해도 되는 거니까요. 가성비가 높은 소품이었죠(웃음). ▶ 그 춘화는 실제 있는 건가요? - 이번에 자료 조사하면서 처음 봤어요. 그런데 세상사람들은 다 알고 있더라고요(웃음). 이 세상의 춘화를 대표하는 작품이래요. 동서고금의 모든 춘화의 대표 선수죠. 영화에 등장하는 건 우키요에 전문가인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작품이에요. 호쿠사이는 잘 알고 있었는데 그가 춘화를 그린 줄은 몰랐어요. ▶ 감독님 영화는 여성을 수동적인 존재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능동적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게 인상적이에요. - 그게 멋있잖아요. 멋있는 행동, 멋진 변화는 영화에서 늘 보고 싶은 거니까요. 그건 남자든 여자든 마찬가지에요. 그런데 멋있는 남자는 영화에 많이 나오지만 멋있는 여자는 많이 안 나오죠. 그래서 그런 사람을 더 보고 싶은 것 같아요. ▶ 감독님이 생각하는 '멋있는 여자'는 어떤 여자인가요? -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요. 그런데 그건 남자도 마찬가지에요. ▶ 그럼 '멋있는 사람'인 거네요. - 그렇죠. 다만 여자는 더 많은 억압과 차별 속에 놓여 있기 때문에 순종하지 않는다는 게 더 어려운 과제죠. 억압과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더 큰 용기가 필요하고요. 또한 큰 고통을 동반하는 일이기도 하죠. 그리고 이런 게 영화적으로 더 드라마틱하기도 하고요. ▶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히데코와 숙희가 사랑을 나눌 때 옥으로 된 방울을 사용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 그게 '악마' 코우즈키가 히데코에게 강제로 읽게 한 음란한 책의 내용이잖아요. 그런데 그 내용을 낭독하는 장면에서 히데코는 스스로 그 내용을 음미해요. 정전이 돼 깜깜해졌는데도 책을 읽는 모습을 통해 내용을 아예 외우고 있다는 게 표현되죠. 그리고 숙희와 함께하는 걸로 상상해보고요. 그렇게 스스로의 쾌락을 찾아가는 거죠. 곧바로 히데코와 숙희의 첫 정사로 이어지기도 하고요. 그래서 영화 마지막에 방울을 사용하는 건 성적 도구로서의 역할을 완전히 전복시킨다는 의미였어요. 자기 스스로 자기가 원하는 상대와 즐겁게 노는데 사용하는 장난감이 되는 거죠. 그리고 그 방울이 코우즈키가 히데코의 손등을 때리는 문진과 형태가 같잖아요. 자신이 학대당할 때 쓰인 도구와 비슷하게 생긴 것을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 거기에 전복의 쾌감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 개인적으로는 히데코가 왜 자신이 그토록 읽기 싫어한 책의 내용을 따라하는 건지 의문이 있었어요. - 각본이 나왔을 때 제작진 내부에서도 비슷한 문제제기가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 장면이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하나는 아까 말씀드린 '전복시킨다'는 의미고요. 두 번째는 사람은 무언가를 거부한다고 해서 그것을 송두리째 자기 인생에서 삭제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히데코가 그걸 이용한 게 보다 현실에 가깝다고 본 거예요. ▶ 오랫동안 영화를 만들어왔습니다. 여전히 영화 작업이 즐겁나요? - 즐거워서 하는 일은 아니죠. 의무로 하는 거죠(웃음). ▶ 그래도 영화를 보는 건 즐겁지 않나요? (웃음) - 그렇죠. 하지만 영화를 만들면 정작 영화를 볼 수 없어요. 요즘은 한 달에 한 편도 못 보는 것 같아요. 두 달에 한 편 정도일까요? 칸에 가서도 영화를 못 봤으니까요. ▶ 최근 자극을 받은 영화가 있지 않을지 궁금했습니다. - 요즘 영화는 잘 안 봐요. 어쩌다 영화 한 편 겨우 볼 시간이 나는데 좋은지 안 좋은지 확실치 않은 요즘 영화를 보는 것보다는 공인되고 입증된 고전을 보는 게 훨씬 나으니까요. 최근에는 나루세 미키오의 '흐트러지다'를 재미있게 봤어요. 한 번의 회고전에서 세 번이나 봤죠(웃음). ▶ 차기작으로 할리우드 작품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 아직 투자가 결정되지 않아서 차기작이라고 확실하게 밝히기는 조금 어려운 것 같네요. (기자 주: 박찬욱 감독의 차기작으로는 스릴러 소설 '도끼'가 거론되고 있다.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이 2005년에 한 차례 영화로 만든 작품이기도 하다.) ▶ 할리우드에서 영화 제안을 받는 건 어떤 기분인가요? - '올드보이' 이후부터 제안을 받아와서 이제 낯설지만은 않아요. 하지만 처음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는 할리우드를 생각하지 않았죠. 한국사람이 할리우드에서 작업하는 건 상상도 못할 때였으니까요. 처음 할리우드에서 영화 제안을 받았을 때는 어리둥절했지만 지금은 적응이 됐어요(웃음). [!{IMG::20160607000173.jpg::C::480::박찬욱 감독./CJ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