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세제 기업 커질수록 불이익… 성장 막는 ‘계단식 구조’
신기술 선점이 생존을 좌우하는 시대에 한국의 연구개발(R&D) 세제 구조는 기업이 커질수록 오히려 불리해지는 계단식 구조로 고착되고 있다. 대기업은 세제 혜택이 줄고, R&D 투자에 따른 직접 환급제도조차 없어 혁신 투자가 위축된다는 지적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2일 OECD 이노택스(INNOTAX) 포털에 등재된 33개국의 'R&D 세제 지원제도'를 비교·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R&D 세제 인센티브 제도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공제율을 차등 적용하는 국가는 한국을 포함해 6개국뿐이었다. 나머지 27개국은 미국, 영국, 프랑스 등처럼 기업 규모와 무관한 단일 공제율을 적용하고 있었다. 차등제도를 둔 6개국 중에서도 한국의 공제율 격차는 가장 컸다. 현행 조세특례제한법상 일반 R&D 세액공제율은 대기업 2%, 중소기업 25%로 23%포인트 차이가 난다. 신성장·원천기술, 국가전략기술의 경우에도 10%포인트의 격차가 존재한다. R&D 설비투자 세액공제 역시 대기업 1%, 중소기업 10%로 9~10%포인트 차이를 보였다. 일본은 대기업의 R&D 지출 증가율에 따라 1~14%, 중소기업은 12~17% 수준으로 차등 폭이 3~11%포인트에 그친다. 일부 구간에서는 대기업이 오히려 더 높은 공제율을 적용받기도 한다. 호주 역시 R&D 투자 규모가 일정 비율(전체의 2%)을 넘는 대기업에 16.5%의 높은 공제율을 적용하는 등 '많이 투자할수록 더 주는' 구조다. 반면 한국은 공제율 격차가 크고, 환급제도도 없다. 기업이 세액공제를 받아도 납부세액이 적으면 공제받지 못한 금액이 남는데, 이를 현금으로 돌려주는 '직접 환급제도'가 부재하다. OECD 33개국 중 22개국이 환급제도를 운영 중인 가운데, 한국과 일본 등 11개국만 환급이 불가능하다. 이 중 17개국은 기업 규모와 관계없이 전 기업이 환급 대상이고, 미국·호주·캐나다·폴란드·콜롬비아 등 5개국은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에 한해 환급을 허용한다. 프랑스는 공제액을 3년간 이월 후 남은 잔액을 환급하고, 스페인은 공제액의 80%까지 환급한다. 반면 한국과 일본, 핀란드, 멕시코 등은 환급 자체가 없으며, 한국은 미공제 금액을 최대 10년간 이월만 할 수 있다. 대기업 공제율만 비교해도 한국은 OECD 최하위권이다. 법인세 세액공제를 운영하는 18개국 중 한국의 일반 R&D 공제율(2%)은 이탈리아(10%), 헝가리(10%), 포르투갈(32.5%)보다 훨씬 낮다. 신성장·국가전략기술 분야 공제율은 주요국과 비슷하거나 높지만, 실제 적용받는 대기업은 전체의 7.6%에 불과해 실효성이 떨어진다. 대한상의는 "기업이 성장할수록 인센티브가 줄어드는 계단식 구조가 오히려 성장의 장애물이 된다"며 "대·중소기업 간 차등적 지원 방식을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R&D 투자의 수익 실현에는 시차가 존재하므로, 미수령 공제액을 현금으로 환급하면 기업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과감한 투자가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또한 해외 제도 사례를 참고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영국·프랑스·덴마크의 '가속상각제도'처럼 초기 투자비용의 감가상각을 빠르게 인정하면 기업의 법인세 부담을 완화할 수 있고, 일본은 산학연 협력과 스타트업 연계를 통한 오픈이노베이션에 더 높은 공제율을 적용하고 있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국가 간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기업의 혁신 역량을 높일 수 있는 R&D 세제 지원이 중요하다"며 "기업 규모가 아니라 성과를 기준으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용기자 lsy2665@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