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의 '청맹과니'] 아이보리와 갤럭시
20세기 초, 미국은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대규모 기업들이 등장했다. 당연히 많은 노동력이 필요해졌다. 수많은 일자리, 높은 임금, 그리고 광활한 토지는 전 세계 사람들을 유혹했고,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이들은 미국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민자들의 삶은 고단했다. 청춘의 혈기 하나만으로 미국 땅을 밟은 이들에게 쾌적하고 위생적인 주거시설은 사치였다. 더럽고 지저분한 이민자들의 슬럼가에서는 전염병이 만연했고, 꿈을 안고 온 이민자들은 속절없이 죽어갔다. 그리고 슬럼가에서 발생한 전염병은 미국 전체를 위협했다. 그러나 아무도 이에 대한 뾰족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 했다. 이 즘, 전염병들을 퇴치한 이름 없는 영웅들이 등장했다. 이 전염병을 해결한 사람은 의사도 아니었고, 미국 정부도 아니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전염병을 몰아낸 사람들은 아이보리 비누의 광고 담당자들이었다. 당시 광고 담당자들은 이민자들이 새로운 소비자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고, 이민자들의 생활을 분석했다. 광고 담당자들은 '여성 보다는 남성들이 땀을 많이 흘리는 일에 종사할 뿐만 아니라, 위생관리에도 덜 적극적이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신사는 매일 샤워를 한다.'는 카피로 대대적인 광고를 시작했다. 광고의 효과는 대단했다. 이민자 청년들은 자신의 연인에게 신사로 보이기 위해서, 매일 샤워를 하여 땀 냄새를 없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이보리 비누의 판매량의 늘수록, 전염병은 줄어들었던 것이다. 얼마 전, 우크라이나의 한 병사가 삼성의 갤럭시 휴대폰 덕분에 생명을 구한 사연이 알려졌다. 병사가 가지고 있던 갤럭시의 티타늄 프레임이 포탄 파편을 막아준 것이다. 병사는 "휴대폰이 상처를 막아주는 갑옷이 되었다."며 놀라워했다. 해당 사연을 전해들은 삼성전자 측은 무상수리를 결정했다고 한다. 이번 갤럭시 사건은 20세기 초의 아이보리 광고를 연상시킨다. 아이보리 비누의 광고담당자들은 그저 자신의 업무를 충실히 수행한 것뿐이지만, 결과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렸다. 마찬가지로 삼성전자의 갤럭시 개발자가 방탄 목적으로 휴대폰을 설계한 것은 아니지만, 튼튼한 휴대폰은 한 병사의 생명을 살렸다. 분명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숭고한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숭고한 업무를 의사, 소방관, 경찰관 같은 특별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이보리 비누 이야기나 갤럭시 이야기를 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가볍고 튼튼한 휴대폰을 만들기 위한 평범한 우리 이웃의 노력이 생명을 구하는 숭고한 결과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런 일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이름 없는 이웃들의 착실하고 선량한 노력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의 삶을 좀 더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우리의 평범한 이웃들이야 말로 진정한 영웅인 것이다. 도를 닦기 위해서 꼭 산으로 갈 필요는 없고, 영웅이 되기 위해서 꼭 소방관이 될 필요는 없는 법이다.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가는 것이 도를 닦는 것이고, 하루하루를 진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을 구하는 일이다. 오늘 당신의 하루는 어떠했는가? 오늘도 열심히 하루를 살았는가? 만약 그렇다면 당신 역시 이름 없는 영웅이다. 김준형 칼럼니스트(우리마음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