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의 명화 에세이] 레고로 만든 새로운 세상-네이선 사와야(Nathan Sawaya)
"나는 변호사였다. 하지만 변호사여서 행복했던 적은 특별히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살면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예술을 만들어내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변호사를 그만뒀고 나는 풀타임 아티스트가 되었다" 《나는 나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네이선 사와야 이런 고백으로 시작되는 책이 있다. 미국의 아티스트 '네이선 사와야'의 책이다. 무엇이 그를 변호사에서 풀타임 아티스트로 만들었을까? 바로 '레고'였다. 그는 레고 블록을 수없이 연결하고 재조합해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어낸다. 그는 취미로 레고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걸고, 예술가로서 작업에 임한다. 뉴욕에서 인정받는 변호사였던 그는 결국 변호사를 관두고 자신이 좋아하는 레고 아티스트가 되었다. 자신이 가장 힘들었던 것은 오로지 주변인의 반대뿐이었다고 한다. 자신을 잘 아는 사람부터 자신을 잘 모르는 사람까지 변호사를 관두고 아티스트가 되는 것을 모두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예술이 자신의 삶과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준다고 믿었고, 예술은 옵션이 아니라 일상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결국 그는 레고 아티스트가 되었고, 2007년 랭커스터 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하고, 대중과 미술 비평가로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그의 전시 'The Art of the Brick' 전은 CNN이 선정한 '꼭 봐야 할 세계 10대 전시'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 작품은 2004년 그가 로펌을 떠나기로 한 날, 시작되었다.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할 때조차 머릿속이 온통 이 작품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던 그는 이 작품이 현실화되기 까지 수없이 메모장과, 음료수 받침대와 식당 영수증에 스케치를 했다. 자신의 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쏟아져 내려오는 노란 레고 블록 인간은 어쩌면 네이선 사와야 자신이 아니었을까? 내면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는 이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자신의 열정을 분출하고 있는 네이선 사와야 자신인 것이다. 오리건 주 베네타에서 자란 네이선 사와야는 이 라는 작품을 만들 때 자신의 고향을 생각했다. 가족, 고향의 친구들, 그리고 어린 시절의 추억…현재 자신의 모습이 과연 어느 때부터 형성되어 온 것일까? 라는 고민과 앞으로 바뀌지 않을 나의 모습과 바뀔 수 있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고민들이 이 작품에 담겨있다. 우울증으로 고생했던 그는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운동도 하고, 잠을 더 많이 자기도하고, 잠을 덜 자기도 했다. 하지만 작품을 만들었을 때가 가장 우울증에서 벗어나는데 효과가 좋았다고 한다. 그는 그 누구보다 창작 행위에 깃든 '치유의 힘'을 믿는 아티스트기도 하다. "우리는 좀 더 많은 예술작품들을 만들어내야 한다. 석 달을 들여가며 실물 크기의 공룡을 재현해내라는 소리가 아니다. 그냥 해변에서 몇 분 그림만 그려도 좋다. 아이들과 손가락 그림을 그려봐도 좋다. 책상에 앉아 뭔가를 끼적이는 것도 좋다…하루에 몇 분, 일주일에 몇 분이라도 뭔가를 만들다보면 훨씬 행복해질 것이다." 그의 말처럼 창작행위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빈 노트에 끄적이는 낙서들, 어린이들이 작은 나뭇가지로 땅에 그리는 그림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 질 수 있다. 아이들이 작은 부품 같은 레고 블록으로 알록달록 자신들의 세상을 쌓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흥미롭게도 이 작품은 네이선 사와야가 레고 그룹과 사이가 좋지 않을 때 만든 작품이다. 그는 어린이들에게 희망과 재미를 주는 장난감이지만 '죽음'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어느 날 레고 그룹으로부터 저작권 침해금지 이메일을 받았다. 다행히 변호사였던 그는 레고그룹으로부터 온 메일의 내용을 잘 이해했고, 지금은 레고그룹에 속해있지는 않지만 레고그룹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세계 최고의 레고빌더이다. '레고 마스터 빌더' 이면서 '레고 서티파이드 프로페셔녈' 로 공식 인정된 사람은 네이선 사와야 뿐이다, 이 작품은 호주의 브리즈번에서 활동하는 사진작가 딘 웨스트와 함께한 작품이다. 딘 웨스트는 네이선 사와야에게 연락해 자신의 초현실주의 사진에 네이선 사와야의 작품을 콜라보레이션 하고 싶다고 했고, 그 결과 겨울 밤 조용한 영화관에 붉은 레고 드레스를 입은 여인의 작품이 완성되었다. 늘 혼자 방에서 색깔별로 정리된 레고 박스들과 함께 작업하던 그에게 이 작업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는 사진작가 딘 웨스트 덕분에 네바다 주의 고속도로를 한없이 달리기도 했고, 촬영 장소를 허가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며 로스앤젤레스의 어느 가게 앞에서 갑자기 사진을 찍기도 했다. 창작의 시간동안 완벽히 홀로 몰입이 되어야지만 완성을 이루는 그의 예술관이 이 작업을 통해 누군가와 함께하는 인고의 결과물이 된 것이다. 결국 이 작품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자신의 작품 중 하나가 되었다, 이라는 이름의 이 앙증맞은 작품은 전 세계 도시에 수십 개, 수백 개가 존재했었다. 미국 전역, 싱가포르, 대만에도 그는 허그맨을 만들어 두고 왔다. 하지만 허그맨은 도시 속에서 1시간정도 존재하다가 사라진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예술 작품이 옮겨간 것이다. 복잡한 도시에게 네이선 사와야가 주는 그만의 위트가 담긴 선물공세가 아닐까? 그는 의 작업 과정을 어릴 때 하늘로 날려 보낸 풍선들에 비유했다. 수많은 풍선들이 하늘로 날아올라 누군가에게 선물처럼 다가갈 것만 같은 기대감이 나에게도 있었다. 동심의 기억이 작품으로 창조되면 그 작업들은 한 편의 시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의 예술적 원천이자 예술적 소재이자 재료인 '레고'는 덴마크 서부 유틀란드 반도의 작은 마을 빌룬(Billund)의 목수였던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Ole Kirk Christiansen)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1916년 작은 농경 마을인 빌룬에 목공소를 차려 가구나 주택 자재를 만들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하지만 목공소는 잘 되지 않았고,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은 주문이 없는 시간에는 나무로 네 명의 아들을 위한 장난감을 만들며 시간을 보냈다. 신기한 것은 그가 만든 나무 장난감이 점점 마을에 돌고 돌아 마을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 아이템이 된 것이다. 그때부터 그는 장난감을 더 많이 만들기 시작해 1932년 레고를 창립한다. 레고의 창립자인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이 지은 '레고'라는 단어는 덴마크어로 '잘 놀다'라는 뜻의 'Leg godt'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라틴어로 레고의 뜻은 '내가 조립한다(I put together)'이다. 흥미롭게도 네이선 사와야는 풀타임 아티스트로써 조립을 하며 즐겁게 잘 놀고 있지 않은가. 그는 어쩌면 레고를 가장 재미나게 잘 가지고 노는 지구인 중 하나일 것이다. 여전히 그는 맨해튼과 로스앤젤레스에 자신의 스튜디오를 두고 수많은 레고 블록들에게 둘러싸여 작업하고 있다. 레고가 너무 좋아 엄지손가락에 레고블럭 문양의 문신까지 하고, 공항 세관을 통과할 때 입출국 카드에 직업란이 있으면 반드시 '레고 아티스트'라고 적는 네이선 사와야, 그에게 변호사는 사회가 인정한 직업이었고, '레고 아티스트'는 스스로가 사랑한 직업이었다. 나는 네이선 사와야처럼 익숙한 재료를 새롭게 창작을 하는 아티스트가 더 많이 활동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일상의 사물도 얼마든지 예술적일 수 있다는 간단한 메시지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아티스트들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더욱 예술과 가까워질 것이다. 미국 전역을 거쳐 호주, 런던, 더블린, 취리히, 로마, 시드니, 파리 멜버른, 암스테르담, 브뤼셀, 요하네스버그, 상하이, 타이베이, 싱가포르 등에서 열린 그의 전시가 한국에 올 날을 기다려 본다. 그의 말을 빌어 힘주어 말하고 싶다. "예술은 우리 모두의 가까이에 있다. 상업 속에 매일의 창조성과 상상력 속에." 이소영(소통하는 그림연구소-빅피쉬 대표/bbigsso@naver.com/출근길 명화 한 점, 그림은 위로다. 명화보기 좋은 날, 모지스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 저자) 작품 출처: www.brickartist.com / www.adventuresbydadd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