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원화 코인' 상표 선점 경쟁…'부작용' 우려 여전
은행·핀테크·증권사 등 국내 금융기관들이 잇달아 '원화 스테이블 코인'과 관련한 상표를 등록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가 법안 마련에 속도를 내면서 원화 스테이블 코인의 발행이 임박했다는 관측에 상표 선점에 나선 모습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원화 스테이블 코인 발행 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여전하다. ◆ '스테이블 코인' 입법 속도…'상표권 경쟁' '스테이블 코인'은 달러 등 기존 화폐 가치에 대응해 발행되는 가상자산이다. 가치가 일정한 만큼 가상자산 거래 시 규제가 많은 기존 화폐를 대신해 활용된다. 지난 2017년 전체 가상자산 거래에서 스테이블 코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7.9%에 불과했지만, 2025년 5월에는 84%까지 늘었다. 전체 스테이블 코인 시장 규모도 지난 1년 동안만 70% 이상 성장했다. 또한 스테이블 코인은 송금·결제에 복잡한 절차나 수수료가 없고, 해외 이전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워 기존 화폐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결제 수단으로 주목받는다. 일본·유럽연합(EU)·홍콩 등 주요국은 이미 자국 통화와 연동된 스테이블 코인과 관련한 근거법을 마련했고, 미국도 스테이블 코인과 관련한 법안이 상원을 통과해 하원 표결을 앞뒀다. 국내에서는 원화 스테이블 코인의 발행 근거를 포함한 '디지털자산 기본법(가상자산 기본법)'이 지난 11일 발의돼 국회 정무위에서 검토 중이며, 금융위원회도 하반기 시행을 목표로 관련 규제를 포함한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 2단계'의 입법을 준비하고 있다. 국회와 정부가 관련법 마련을 서두르면서 '원화 스테이블 코인'의 발행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관련 업계에서는 상표권 선점을 위한 경쟁이 본격화했다. 디지털자산 기본법이 정하는 스테이블 코인 발행 기준이 최소 자기자본 5억원으로 문턱이 낮은 만큼,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상표권 분쟁을 예방하겠다는 것. 카카오페이는 지난 17일 'KRWP', 'KRWKP' 등 18개 상표를 특허청에 출원했다. 대표적인 '스테이블 코인'인 테더(USDT), USD코인(USDC)과 비슷하게 대한민국 원을 뜻하는 'KRW'와 카카오페이를 뜻하는 'K'나 'P'를 결합했다. 복수의 상표권을 등록해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유사 상표를 염두했다는 분석이다. 은행권에서도 KB국민은행('KBKRW' 등 32건), 하나은행('KRWHana' 등 48건), 카카오뱅크('KRWKB' 등 12건)가 상표권 확보에 나섰고, 미래에셋증권의 자회사 미래에셋컨설팅도 유사한 형태의 상표를 등록하며 경쟁에 뛰어들었다. 업계에서는 스테이블 코인과 관련한 법안이 아직 입법 단계에 있는 만큼, 향후 입법 현황에 따라 금융권의 상표권 경쟁도 더 격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스테이블 코인과 관련한 법안이 아직 입법 단계에 있는 만큼, 금융권의 상표권 경쟁은 브랜드 선점 차원으로 보인다"라면서 "향후 입법 상황에 따라 상표권 등록에 나서는 곳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 스테이블 코인, '부작용' 우려도 여전 관련 업계에서도 전략을 본격화하면서 '원화 스테이블 코인'의 발행이 머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오지만, 스테이블 코인 발행 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한국은행은 지난 25일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원화 스테이블 코인 도입 시 '자본 유출 감소'를 기대하는 정치권·업계의 기대와는 달리, 원화 스테이블 코인이 오히려 자본의 국외 유출을 촉발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자본 유출 예방'은 관련 업계에서 스테이블 코인 발행을 지지하는 주요 근거 가운데 하나다. 국내 거래소에서 달러 기반 스테이블 코인이 차지하는 점유율을 원화 기반 코인으로 대체하면, 자본 유출을 억제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원화 코인 발행 시 달러 코인을 구매하는 과정을 통해 환전 과정을 생략할 수 있어, 오히려 자본 유출을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비(非) 기축통화인 원화보다 기축통화인 달러의 선호도가 높은 만큼, 원화 스테이블 코인의 발행이 자본 유출을 가속할 수 있다는 것. 또한 한국은행은 민간 주도의 스테이블 코인이 확산하면 중앙은행의 금리정책이나 유동성 조절 기능이 약화할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시장 내에 중앙은행의 통제를 받지 않는 유동성 비중이 커질수록, 기존 법정통화 기반의 통제력도 약화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다. 한은은 "접근성과 효율성 등 다양한 장점을 고려해 국내외에서 스테이블 코인의 제도화가 추진되고 있지만, 스테이블 코인 확산 시 금융안정·경제 전반에 잠재적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측면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내외의 스테이블 코인 시장·규제 동향에 대한 점검을 유지하는 한편, 기반 혁신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거시건전성 정책·통화정책 측면에서의 잠재 위험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규제가 정립될 수 있도록 정부 및 금융당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겠다"라고 덧붙였다. 국제결제은행(BIS)도 지난 24일(현지시간) 공개한 연례보고서(Annual Economic Report 2025)의 초안에서 스테이블 코인이 기존 화폐를 대체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BIS는 "(스테이블 코인은) 중앙은행이 법정화폐를 통해 제공하는 전통적인 결제 기능을 갖추지 못했다. 스테이블 코인은 안정적인 화폐로의 역할을 충족시키지 못하며, 규제가 없어 금융 안정성과 통화 주권에도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각국 중앙은행이 중앙은행 준비금, 상업은행 예금, 정부 채권을 통합한 '통합원장(unified ledger)'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각국 중앙은행 발행 법정화폐의 결제 기능은 유지하되, 스테이블 코인이 갖는 '토큰화'의 이점을 통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승진기자 asj1231@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