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영화 실종…OTT에 밀린 영화관, 다음 먹거리는 非영화·공간
국내 영화관 산업이 구조적 침체의 늪에 빠졌다. 관객 수는 코로나 팬데믹 이전 수준을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제작 편수 감소와 흥행작 쏠림 현상,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확산에 따른 관람 행태 변화까지 겹치며 극장 본업만으로는 성장 동력을 찾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 영화진흥위원회(KOFIC)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박스오피스 총 관람객 수는 1억 548만명으로 집계됐다. 2022년 1억 1280만명, 2023년 1억 2513만명, 2024년 1억 2312만명으로 회복 흐름을 보이다가 지난해 다시 1억 명 초반으로 후퇴, 팬데믹 이전(연 2억명대)의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국내 박스오피스 1위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토피아 2'로, 누적 관객 수는 약 754만 명에 그쳤다. 코로나19 시기를 제외하고 천만 영화가 단 한 편도 나오지 않은 것은 2011년 이후 처음이다. 한국영화 최고 성적을 기록한 영화는 '좀비딸'로 563만 명을 동원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5월 롯데컬처웍스와 메가박스의 합병 논의는 업계 재편의 신호탄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논의가 장기화되며 사실상 동력이 약해진 모습이다. 공정거래 이슈와 이해관계 조율, 시장 환경 변화 등이 맞물리면서 '빅딜'을 통한 구조조정보다는 각 사가 생존 전략을 개별적으로 모색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합병 논의가 주춤한 사이 영화관 업계의 전략 방향은 보다 명확해졌다. 핵심은 영화 상영 중심의 사업자에서 벗어나, 다양한 콘텐츠를 수용·유통하는 '공간 사업자'로의 전환이다. 스크린 수와 좌석 점유율 경쟁이 아닌, 공간 활용도와 콘텐츠 확장성이 새로운 경쟁력이 되고 있다. 영화관은 이미 대형 스크린과 음향 설비, 도심 핵심 입지라는 강점을 갖고 있다. 이를 영화 외 콘텐츠로 확장하면 투자 대비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판단이다. 실제로 업계는 콘서트 실황, 스포츠 중계, e스포츠, 공연·뮤지컬 영상, 애니메이션·IP 특별전 등 비(非)영화 콘텐츠 비중을 점차 늘리고 있다. CGV는 지난해 '2025 KBO 포스트시즌' 전 경기를 스크린X라이브로 생중계했다. 평균 객석률 80%를 돌파했다. 양옆으로 확장된 화면과 현장감을 앞세운 '극장 직관' 경험을 제시하며 새로운 야구 응원 문화로 자리잡았다. 국내 e스포츠 팬들의 관심이 집중된 'LoL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 생중계 역시 팬들의 응원 문화와 결합된 색다른 관람 경험으로 주목받았다. 음악 콘텐츠에서는 아티스트 다큐멘터리, 콘서트 실황, 라이브 뷰잉, 청음회 등 다양한 포맷을 시도했다. 롯데컬처웍스는 지난해 하반기 영화와 공연을 융합한 체험형 콘텐츠 '샤롯데 더 플레이'를 롯데시네마 신도림에 처음 선보였다. 영화관 스크린에서 송출되는 영상과 눈앞에서 펼쳐지는 배우들의 연기가 어우러지며 몰입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생동감 넘치는 현장 속에서 관객은 단순히 '보는 존재'가 아니라 이야기를 완성하는 또 하나의 주인공으로 거듭나 새로운 자극을 경험하게 된다. 앞서 체험형 전시공간 '랜덤스퀘어', 서브컬처 복합문화공간 '브이스퀘어', 롤플레잉 체험 공간 '라이브시네마'를 통해 영화관 인프라를 활용한 관객 참여형 콘텐츠를 선보인 바 있다. 그리고 김종열 전 CJ 4DPLEX 대표이사를 영입하며 사업 전략을 재정비했다. 영화 상영을 대신할 신성장동력으로 콘텐츠 개발과 IP 경쟁력 강화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드라마 제작사 에이스토리와 원천 IP 개발 및 콘텐츠 발굴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메가박스도 공연 실황, 콘서트 라이브 뷰잉, VR 콘서트 등 극장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콘텐트 맞춤형 시설을 늘리고 있다. 이처럼 일부 상영관은 강연, 북토크, 기업 행사, 프라이빗 상영 등 대관 중심으로 운영되며 '멀티 유즈(Multi-use) 공간' 성격을 강화하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영화관 단독의 생존 전략을 넘어, 콘텐츠 산업 전반과의 연결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읽힌다. OTT가 개인화된 시청 경험을 제공한다면, 극장은 집단적·현장적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혼자 보는 콘텐츠'가 아닌 '함께 소비하는 경험'에 방점을 찍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관객 수 회복만을 기다리는 전략은 한계가 분명하다"며 "영화관이 '영화를 트는 장소'에서 '콘텐츠가 모이고 경험이 발생하는 공간'으로 변모할 수 있을지, 그 방향성과 실행력이 향후 극장 산업의 생존을 가를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신원선기자 tree6834@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