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시대] 꿈의 오천피 달성…K자형 성장 속, 반도체·AI·로봇 주도주 랠리
"그저 구호인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코스피 5000을 볼 줄이야", "미장 말고 국장할 걸", "지수 투자도 국장으로!", "조정 왔을 때 살 걸, 떨어지면 추매한다" 22일 코스피가 장중 5000선을 돌파하며 사상 처음으로 '오천피 시대'를 열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상승장에 올라타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추가 상승에 대한 기대가 동시에 커지고 있다. 이 같은 투자 심리 변화의 배경에는 전례 없는 상승 속도가 있다. 지난해 10월 27일 4000선을 넘은 이후 불과 3개월여만에 1000포인트를 끌어올린 것으로, 역대 코스피 상승 구간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다. 과거와 비교하면 상승 속도의 차이는 더욱 극명하다. 코스피는 1000에서 2000까지 오르는 데 18년 3개월, 2000에서 3000까지는 13년 5개월, 3000에서 4000까지도 4년 9개월이 걸렸다. 반면 4000에서 5000까지는 석 달도 채 걸리지 않았다. 시장에서는 "계단식 상승이 아니라 구조가 바뀐 랠리"라는 평가가 나온다. 코스피의 상승 속도는 글로벌 주요 증시와 비교해도 두드러진다. 코스피는 5000선에 안착하며 최근 6개월 기준 약 50%에 달하는 급등세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일본 닛케이225와 중국 본토 증시(가권지수)가 30% 안팎 상승하는 데 그친 것과 비교하면 상승 속도와 폭 모두에서 한 단계 앞선 흐름이다. 특히 미국 S&P500과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가 10% 안팎의 제한적인 상승에 머문 점을 감안하면, 글로벌 증시 반등 국면에서도 한국 증시의 상대적 강세는 뚜렷하다. ◆반도체·로봇이 이끈 오천피…외국인 수급 더해진 '불장' 이번 랠리는 반도체·AI를 중심으로 한 실적 기반 상승, 여기에 외국인 수급의 복귀와 정책 신뢰 회복이 맞물린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인공지능(AI) 서버 투자 확대와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급증, 메모리 가격 반등 기대가 동시에 작용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가파르게 상승했다. 실제로 지난해 하반기 이후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주가는 급등했다. 수급 측면에서도 외국인 자금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는 지난해 12월 이후 유가증권시장에서 누적 4조1000억원 규모의 순매수에 나섰고, 연초 이후에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시가총액 상위 종목을 중심으로 매수세를 이어가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번 상승은 개인 수급도 두드러지지만 결국 '외국인이 방향을 만든 장'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윤석모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오천피 핵심주역은 외국인"이라며 "글로벌 자금은 미국 시장 대비 상대적 밸류에이션 매력이 높고, 전 세계에서 이익 모멘텀이 가장 강한 한국 시장으로 유입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정 시기를 제외하면 지수는 외국인 수급과 궤를 같이해왔으며, 현재의 유동성 확장 국면을 주도하는 주체 역시 글로벌 투자자"라는 게 윤 센터장의 설명이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상승이 한 국면을 형성한 이후, 지수 상승의 동력은 로봇을 비롯한 다른 대형 성장주로 확산됐다. 특히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인 'CES 2026'에서 휴머노이드로봇 '아틀라스'를 공개한 뒤 현대차는 연초 대비 60% 이상 오르는 저력을 보여줬다. 연초 이후로 치면 반도체보다 더 큰 수익을 거뒀다. 이영곤 토스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연초 들어 반도체 가격과 실제 거래 기준가 흐름이 확인되면서 실적 가시성이 급격히 높아졌다"며 "4500선을 넘는 구간까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지수를 끌었고, 4700~4900 구간에서는 현대차 그룹이 로봇과 피지컬 AI 기대를 바탕으로 상승 흐름을 이어받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반도체 주도의 랠리 과정에서 현대차와 기아 등 자동차주는 로봇·피지컬 AI 기대를 타고 강세를 보이며 지수 하단을 받치는 역할을 했다. 반도체 주가에 차익 매물이 일부 출회하는 국면에서도 지수 조정이 제한된 배경이다. 다수의 시장전문가들이 "주도주의 바통이 끊기지 않고 이어졌다는 점이 이번 랠리의 핵심"이라고 입을 모았다. ◆정책 기대감 위에 선 오천피…'K자형 성장'은 숙제 코스피 5000 돌파에는 정책 환경 변화도 중요한 배경으로 꼽힌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자본시장 활성화와 기업가치 제고가 정책 전면에 등장하면서, 증시에 대한 신뢰 회복 기대가 빠르게 확산됐다. 상법 개정 논의, 주주환원 강화 기조, 불공정거래 규제 강화 등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시장을 다시 바라보는 계기로 작용했다. 실제로 지난해 상장사들의 자사주 매입과 소각 규모는 20조원을 웃돌며 사상 최대 수준을 기록했고, 현금배당 규모 역시 크게 늘었다. 시장에서는 "주주환원이 선언이 아니라 숫자로 확인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증권가에서는 제도 변화가 단기 랠리를 넘어 구조적 재평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윤창용 신한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정부의 세제, 자본시장 제도 개선이 투자심리를 뒷받침 하고 있다"고 평가했으며,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역시 코스피가 5000포인트에 근접할 수 있었던 핵심적인 동력으로 정부의 증시 부양 정책을 꼽았다. 아울러 고환율 환경도 대형 수출주의 실적 개선 기대를 자극했다. 원·달러 환율 강세 속에 반도체·자동차 기업들의 원화 기준 이익 확대 가능성이 부각되며 주가를 밀어 올렸다. 시장에서는 코스피 5000 돌파를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한국 증시의 체질 변화가 드러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AI·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산업 사이클의 본격화와 외국인 수급의 복귀, 정책 신뢰 회복이 동시에 작동하며 이번 랠리가 과거와는 다른 성격을 띠고 있다는 평가다. 다만 이번 상승이 대형주에 집중되면서 시장 내부의 양극화는 한층 뚜렷해지고 있다. 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지만 상당수 종목은 상승 흐름에 동참하지 못하며, 한국 증시가 'K자형 성장'이라는 구조적 과제를 안은 채 5000 시대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지수는 빠르게 올라왔지만 모든 기업의 체질이 함께 개선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실적과 경쟁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기업들이 여전히 상당수 존재하는 만큼, 이런 구조적 취약성이 중장기적으로는 지수 추가 상승의 제약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는 업종·종목 간 차별화가 더 심화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실적 중심의 선별적 접근이 불가피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허정윤기자 zelkova@metroseoul.co.kr